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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도시, 나의 팝… 우리만의 시티팝 [임희윤 기자의 죽기 전 멜로디]

입력 | 2021-07-09 03:00:00

한강을 굽어보며 지는 붉은 노을. 오늘도 도시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고 어디선가 일어날 노래의 탄생을 축복한다. 동아일보DB

임희윤 기자


‘스웨덴의 여름 공기는 어떤 질감일까.’

8년 전, 첫 북유럽 출장은 가기 전부터 꽤 설렜다. 스톡홀름에 도착한 첫날, 7시간의 시차와 500cc의 맥주가 준 나른함이 오후 11시를 만나 마법을 부렸다. 그러니까 숙소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택시는 검은 밤 위로 미끄러졌다. 신기루처럼 운하 위 여기저기 뜬 섬과 도시의 야경으로 빨려들어 가듯이. 차량이 다리에 올라선 순간,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시작됐다. 밤의 커튼을 빛의 속도로 제쳐버리는 피아노의 글리산도. 그리고 거짓말처럼….

‘You can dance/You can jive/Having the time of your life∼’(아바 ‘Dancing Queen’·1976년)

‘도#’와 ‘시’, 그리고 ‘E’와 ‘C#7’이 자아내는 황홀감 앞에서 나는 쇠데르말름 지역의 무도회장에서 춤추는 열일곱 소녀가 됐고 그 순간 택시는 지상에서 5cm 정도 부상했던 거라고 아직 난 믿고 있다.

#1. 최근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남한 면적의 16.8%는 도시이며 그 안에 우리나라 인구의 91.8%가 살고 있다.

‘회색빛의 빌딩들/회색빛의 하늘과/회색 얼굴의 사람들/THIS IS THE CITY LIFE!’(넥스트 ‘도시인’·1992년)

이런 랩이 남 얘기가 아닌 사람이 열 명 중 아홉 명도 넘는다는 뜻. 고 신해철 씨가 ‘한 손엔 휴대전화/허리엔 삐삐차고/집이란 잠자는 곳/직장이란 전쟁터’로 묘사한 회색빛 미래 도시는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다. 다름 아닌 우리의 고향이다.

#2.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조용필 ‘꿈’·1991년)

농림축산식품부 등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농어촌으로 향한 20, 30대 청년 인구가 23만 명을 넘겼다. 정든 고향을 뒤로하고 꿈 찾아 향하는 이상향이 어떤 젊은이에게는 이제 되레 농촌과 어촌인 셈이다. 농사일이 낯설고 어려울 때 이들은 어쩌면 노랫말처럼 홀로 지그시 눈 감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그것은 도시의 소리이리라.

#3. 몇 년 전부터 시티팝(city pop) 유행이 돌아왔다. 신스(신시사이저) 팝도 아니고 얼터너티브(대안) 록도 아닌 ‘도시-팝’이라니 좀 투박한 명명. 시티팝이란 본디 1970, 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세련된 분위기의 팝 뮤직이다. 서구의 재즈, 펑크(funk·punk 아님), 솔, R&B의 영향을 받은 기름진 화성과 선율 진행에 차갑게 때려대는 미디엄 템포의 비트, 물안개 같은 도시 감성을 적절히 배합한 장르. 얼마 전, 11집 ‘City Breeze & Love Song’을 낸 김현철 씨는 그룹 ‘빛과 소금’과 함께 한국적 시티팝의 조상으로도 불린다. 후대에 추서(追書)된 조상님 대접을 한때 어색해하던 그가 작심하고 만든 시티팝 앨범이 신작이다.

#4. 신작의 정서적 배경을 그는 정확히 도시 위에 설계했다.

“도시에 살면서도 도시에 사니까 좋더라는 얘기는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시골이 좋았다는 향수에는 크게 공감하면서도요. 그래서 대놓고 한번 도시의 정서를 대변해보고 싶었어요.”

#5. ‘시간은 흘러가네/아쉬움을 남긴 채/해가 뜨면 꺼질/오렌지빛 가로등 같아’

이렇게 흐르는 숨은 시티팝 명곡 ‘드라이브’(2018년)를 지어 부른 싱어송라이터 태윤은 노래 제작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프로 음악가의 길을 포기하고 취직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귀갓길이었어요. 신촌에 있는 회사에서 차를 몰아 강변북로를 달리다 집이 있는 고양 방면 자유로로 빠질 때쯤 강 위로 타는 노을을 보며 어떤 강렬한 정서를 느꼈죠.”

#6. 김현철의 뮤직비디오(QR코드)에서 주인공은 1993년과 2021년의 서울을 기묘하게 오간다. 사실 시티팝의 매력은 시대적·지역적 모호함에 있다. 그것이 아이러니다.

‘근데, 일본 시티팝 앨범 표지에 줄기차게 등장하는 배경은 대체 도쿄의 어느 동네일까요?’

평론가 K에게 물었다. 시큰둥한 답이 돌아온다.

“도쿄보단 미국 아닐지…. 서구에 대한 동경. 풀장 있는 집. 해변. 야자수.”

설득력 있다. 스톡홀름의 댄싱 퀸과 서울의 러브 송을 떠올린다. 이 도시에 살며 저 어떤 도시를 동경한다. 오늘도 세계의 도시는 강변 위로 눈뜬다. 천만 개의 노래도 꿈을 털고 깨어날 것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