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진의 거장’ 윌리엄 웨그만 ‘반려견 의인화’ 작품 84점 전세계 순회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9월 26일까지 첫 반려견 ‘만 레이’ 등 15마리 모델… 대부분 대형 폴라로이드로 찍어 색 조화-모델 구도 등 철저히 준비… 견공들과 눈높이 맞추는 데 ‘혼신’ 작품마다 반려견과 눈빛교감 물씬
윌리엄 웨그만은 자신의 바이마라너종 반려견들을 모델로 사진 작품을 촬영해 왔다. ‘캐주얼’(2002년). 윌리엄 웨그만 제공
빨간 니트와 바지를 입은 개는 시크하게 오른쪽으로 고개를 꺾고 있다. 지루한 듯 허공을 바라보는 무심한 개의 눈빛이란. 어처구니없어 웃음이 터진다. 작품 ‘캐주얼’(2002년)이다.
현대 사진의 거장 윌리엄 웨그만(78·미국)이 포착하는 순간에는 항상 개가 있다. 자신의 바이마라너종 반려견들이다. 1979년 그는 존경하는 미국 사진작가 만 레이(1890∼1976)의 이름을 붙인 첫 반려견 ‘만 레이’와의 작품 활동을 시작으로 총 15마리의 반려견을 의인화해 사진을 찍으며 인간 세상을 풍자했다. 혁신이었다. 그의 작품은 미국 방송사 NBC의 ‘생방송 토요일 밤’과 PBS의 ‘세서미 스트리트’에 소개됐고 뉴욕현대미술관(MoMA), 휘트니미술관 등이 앞다퉈 그의 작품을 소장했다.
웨그만의 작품 84점이 한국에 왔다. 2018년 프랑스 아를 국제사진축제를 시작으로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네덜란드를 거친 세계 순회 사진전 ‘윌리엄 웨그만: 비잉 휴먼(William Wegman Being Human)’이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했다. 디지털카메라 작품은 18점이고, 대형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찍은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무게 106kg, 냉장고만 한 크기의 사진기로 촬영한 가로 51cm, 세로 61cm의 사진들에는 반려견에 대한 웨그만의 애정이 담겼다.
위 왼쪽 사진부터 ‘키’(2017년), 위 오른쪽 사진 ‘모자와 목걸이를 한 개’(2000년), ‘좌우흑백’(2015년). 의인화된 개는 ‘캐주얼’에서 세련됐지만 지루해 보이는 현대인의 삶을 표현한다. ‘키’에서는 유명 브랜드 마크 제이컵스의 옷을 입고 있다. 인내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바이마라너는 ‘모자와 목걸이를 한 개’와 ‘좌우흑백’에서 균형 잡힌 자세를 취하고 있다. 윌리엄 웨그만 제공
색상에 대한 웨그만의 감각은 빼어나다. 미국 매사추세츠미술대를 졸업하고 일리노이대 예술대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어려서부터 회화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깊은 바다 빛 바탕에 흰색 오브제가 어우러진 ‘흘린 모양새’(2013년), 터키석 색과 노란색이 조화를 이루는 ‘오션뷰’(2015년). 배경 색채들이 이루는 조화 속에 회갈색 털을 가진 바이마라너가 도드라진다.
즉석에서 인화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 사진은 후보정을 할 수 없기에 그는 색의 조화와 도구, 모델의 구도를 치밀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산한 촬영장에서는 반려견의 눈높이를 렌즈 눈높이와 맞춰 모델의 집중을 끌어냈다. 물론 쉽진 않았다. ‘캐주얼’의 모델인 캔디는 기분 내키는 대로 달리거나 쉴 새 없이 점프를 했다고 한다.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활동적인 캔디를 어르고 달래며 한 컷 한 컷 찍었을 웨그만의 모습이 그려진다.
전시는 개를 통해 사회 여러 계층을 보여주는 ‘우리 같은 사람들’, 나비부인 같은 오페라와 연극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야기’ 등 모두 9개 세션으로 구성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