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산 특산물, 대추와 복숭아는 향이 좋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샤인 머스캣 포도도 최근 인기를 끈다. 이곳에서 수십년간 특산물 농사를 지은 최덕현 농부는 문득 고민에 빠졌다.
대추는 맛있고, 약재로 쓸만큼 몸에 좋아 중장년층 소비자가 많이 먹는다. 하지만, 청년층은 잘 먹지 않는다. 복숭아도 그렇다. 맛과 향기는 한국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운송 과정에서 물러지고 상하는 일이 잦아 제 맛을 전달하기 어려웠다. 누구나 쉽고 맛있게, 즐겁게 대추와 복숭아를 먹도록 도울 방법을 밤낮 궁리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배강찬 한반도 대표
고민하던 최덕현 농부는 우연히 두 젊은이와 만났다. 미국 뉴욕에서 경영을 공부하고 외국계 패션 기업에서 마케팅을 주도하던 배강찬씨, 일본과 농업 무역을 하며 물류와 상품 개발 노하우를 쌓은 최명환씨다.
각자 잘하는 부분에서 강점을 발휘했더니 뚜렷한 성과가 나타났다. ‘세대 융합 창업’과 ‘농촌 융복합 사업’의 대표 사례라는 평가도 받았다. 2017년 창업한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한반도의 이야기다.
중장년 농부의 지혜에 젊은이의 아이디어 더해 차별화된 대추 가공품 창조
한반도의 주 사업은 경북 경산 특산물 대추·복숭아 원물과 제조 가공품 판매다. 처음엔 최덕현 이사의 고민이었던 ‘청년층에게 대추를 알릴 방안’을 생각했다.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보니 대추 원물이 아닌 가공식품이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가지 맛을 내는 가공식품으로, 대추 원래 맛을 좋아하는 중장년층과 단 맛을 좋아하는 청년층 모두를 사로잡을 계획이었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농가는 대추 가공식품을 좋게 보지 않았다. 대추를 그냥 팔면 되지, 왜 가공해서 파냐는 핀잔도 들었다. 가공 자체도 어려웠다. 대추 과즙은 짜내기 어렵다. 배강찬 대표는 농축액에 물을 섞어 만드는 기존 대추 진액과 다른, 진짜 진액을 만들려 노력했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는, 오로지 대추와 물로만 만든 진짜 진액을 만들기 원했다.
한반도의 주력, 대추 가공식품 선물 세트
간식처럼 간편하게 먹는 대추 칩, 건강음료 대추 발효초, 영양분을 고스란히 담은 대추 진액이 이렇게 탄생했다. 최덕현 이사가 농업 노하우로 상품을 만들고, 배강찬 대표는 디자인 경력으로 포장 방식을 다듬고 외관을 다듬었다. 받는 사람은 물론, 주는 사람까지 ‘예쁘고 맛있는, 좋은 선물이다’라는 느낌을 받도록 예쁘게 포장했다.
한발 나아가 또다른 시장을 찾았다. 명절 선물 세트다. 일반 명절 선물 세트는 많았지만, 지역 특산품으로만 구성한 것은 없었다. 천편일률이었던 명절 선물 세트의 포장과 문구를 피해, 경산 대추의 장점과 고급 이미지를 전할 새로운 메시지를 창조하는데 주력했다.
대성공이었다. 대기업 선물 납품, 수출 공급 제안이 쏟아졌다. 국가유공자에게 드릴 선물을 찾던 청와대의 연락도 받았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극복 기원과 국가보훈처 선물로, 올해에는 지역 상생과 특산물 홍보를 위한 선물로. 한번도 힘들다던 정부 선물 세트 납품을 2년 연속으로 해냈다. 장관상도 받았다.
배강찬 대표는 경북 경산의, 한반도의 대추 사업화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만든 상품은 대추 원물 1차 가공품이다.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대추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은 2차 가공품을 이미 개발 중이라고 귀뜸했다.
최덕현 이사는 대추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손꼽히는 복숭아 전문가이기도 하다. 여러 차례 강연에 나가 노하우를 전수하고, 일본과 교류하며 복숭아 재배 기술을 나눴다. 한반도의 또다른 주력, 복숭아 가공식품 사업도 최덕현 이사의 농사 경험과 배강찬 대표의 상품 기획이 어우러진 결과다.
복숭아도 대추만큼 가공하기 어려운 작물이다. 물이 많고 쉽게 물러져서 보관하기 까다롭다. 맛과 향도 쉬이 날아간다. 시장에 복숭아 가공식품이 거의 없는 이유다. 한반도는 먼저 소비자에게 익숙할 복숭아 아이스티를 떠올렸다. 그러다 당시 유행하던 건강식품 ‘식초’와의 연합에까지 생각이 닿았다. 한반도 복숭아 발효초가 탄생한 순간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덕현 이사와 배강찬 대표는 더 깊게 생각했다. 아이스티를 즐기는 소비자, 몸에 좋은 식초, 복숭아의 맛과 향을 간편하게. 단어를 조합해보니 한가지 상품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경북 경산 명물 복숭아. 한반도의 다음 주력 상품이다.
아이스티의 주 소비자 ‘20대~30대 여성’은 여가, 운동을 즐길때 자기관리 차원에서 ‘홍초’를 비롯한 건강음료를 자주 마신다. 복숭아로 홍초를 만들면 단 맛과 향을 더할 수 있다. 이 때 티백처럼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타서 마실 수 있는 것이 ‘이너워터팩’이다. 한반도의 복숭아 이너워터팩을 눈여겨본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은 벤처육성사업으로 선정해 연구를 돕는다.
생각에 물꼬가 터지자 다음 복숭아 가공식품 아이디어가 속속 떠올랐다. 복숭아의 맛과 영양을 그대로 담은 복숭아청, 중장년이 즐겨 먹을 복숭아 양갱이 그 예다. 이들 상품은 개발 완료 단계로 곧 만나볼 수 있다. 한반도는 대추 명절 선물 세트처럼, 경북 경산 특산물인 복숭아 명절 선물 세트도 선보일 예정이다. 새로운 인기 작물, 경북 경산 샤인 머스캣 포도 가공식품도 구상한다.
무궁무진한 기회와 가능성 가진 농촌, 세대융합사업으로 현실화
배강찬 대표는 경북 경산에 연고가 있다. 부인의 고향이 이곳이다. 치열한 직장 경쟁을 잠시 멈추고 머리를 식히러 온 이곳에서 그는 파트너 최덕현, 최명환 이사와 새로운 사업 가능성을 발견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무궁무진한 기회가 보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덕현 이사도 배강찬 대표를 만났을 때를 회고한다. 지역 특산물로 사업을 벌이고 싶었지만, 상품 기획이며 홍보며 생산이며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두 젊은이와 만났다. 농부는 농사를 짓고, 마케터는 상품을 기획하고 알리고, 유통 담당은 이곳저곳 상품을 알린다. 세대가 융합해 농촌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 보기 드문 사례다.
최덕현 한반도 이사
경북 경산 산학연과 농가의 도움도 한반도의 성장 동력이다. 최덕현 이사는 특히 보건복지부 산하기관 한국한의약진흥원에 각별한 감사를 전했다. 무작정 찾아가 제품 개발 조언을 요청했는데, 한국한의약진흥원이 기술 개발에 도움이 될 논문과 노하우를 상세히 알려줬다는 것. 한의약 박사들의 제품 개발 컨설팅, 특허를 비롯한 지식재산권 출원과 보호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점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상품 제작 기술이 있어도 원물의 품질이 낮으면 모든 것이 허사다. 한반도는 경북 경산의 농가 약 100여곳과 계약을 맺고 신선한 대추며 복숭아를 공급 받는다. 최덕현 이사는 30년 가까운 농업 현장 경험을 농가에 전달한다. 농부들은 좀처럼 습관을 바꾸려 하지 않았지만, 친환경 농법의 장점과 한반도 상품의 인기를 이야기해주니 조금씩 귀를 열었다고 한다.
젊은 피 수혈과 권리 보호, 디자인 홍보와 수매 등 세심한 정책이 농촌융복합 성패 가를 것
배강찬 대표와 최덕현 이사는 입을 모아 말했다. 정부가 농촌 진흥 정책을 더욱 세심히 펼쳐야 세대융합과 농촌융복합 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고. 무작정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아닌, 실무를 살펴보고 농촌과 농부에게 필요한 점과 모자란 점을 콕 집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 한반도가 겪었던 시행 착오는 줄이고 성공 사례는 더 많이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필요한 것은 젊은 피다. 배강찬 대표와 최덕현 이사가 각자의 전문성을 강화해 시너지를 낸 것처럼, 젊은이의 사업 경험과 아이디어를 농부의 농업 노하우와 연계하도록 돕는 제도가 필요하다. 농촌과 기술을 연결하는 톱니바퀴, 윤활유 역할을 할 젊은이가 필요하다.
최명환 한반도 이사
기술 지원과 관리 보호도 필요하다. 농부들이 잠재력 있는 기술이나 상품을 고안하고도 정작 특허를 내지 않아 빼앗기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기술이나 상품을 보호해야 농가의 수입으로 온전히 돌아온다. 그 수입이 다른 기술과 상품, 젊은이들을 이끄는 순환 구조로 이어진다.
농촌이 갖추기 어려운 제품 개발과 디자인, 마케팅 홍보 등 기술을 지원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견물생심이다. 같은 상품이라도 제품 디자인과 홍보 문구에 따라 매력은 달라진다. 해외에 상품을 수출할 때에는 더욱 고도화된 디자인과 홍보 기술이 필요하다. 지역 특산물처럼 좋은 상품은 예쁘게 꾸미고 적확하게 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덕현 이사는 정부의 농산물 수매 기준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크고 무거운, 겉으로 볼때 좋아보이는 농산물에 비싼 가격이 매겨진다. 그러니 세포 크기를 늘리는 호르몬제를 투여해 농산물의 부피만 키우는 편법이 성행한다고 한다. 이런 농산물은 눈으로 볼때는 좋아보이지만, 막상 먹어보면 맛과 향이 밋밋하다.
농산물의 맛과 당도, 향을 판별할 객관적인 기준을 세운 후 수매 가격을 정해야 한다. 그래야 보기만 좋고 맛은 없는 농산물이 아닌, 실제로 맛있는 고품질 농산물이 나온다. 농가 소득과 경쟁력 모두를 높이는 방인이기도 하다.
1등 특산물 가공 회사, ICT로 농촌 바꾸는 기업 되겠다
배강찬 대표와 최덕현 이사에게 한반도의 목표를 물었다. 대한민국 1등 특산물 가공 회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특산물 재배 기술을 갈고 닦아 원물의 품질을 높인다. 가공 기술도 연마하고 상품화도 꾸준히 시도한다. 다른 지역과 재배 협력관계를 맺고, 특산물 브랜드를 만들어 온라인 장터와 수출길도 연다. 상품을 알릴 지역 축제도 고안한다.
배강찬 대표가 경력을 살려 만든 한반도 상품 안내 책자
한반도의 또 하나의 목표는 농업 ICT로 농촌을 바꾸는 것이다. 배강찬 대표 스스로가 느꼈던 농업의 어려움, 비합리성을 ICT로 해소할 수 있겠다는 계산 하에서다. 데이터마이닝 병충해 예방, 귀농 귀촌 콘텐츠 등 농업 ICT 비즈니스 모델을 3년~5년 안에 개척하는 것이 목표다.
한반도의 두 목표는 결국 농업 활성화, 지역과의 상생으로 이어진다. 1등 특산물 가공 회사가 돼 얻은 수익을 지역에 환원한다. 지역이 활기를 띠고 더 좋은 특산물과 상품을 만들게 된다. ICT로 농업을 쉽고 편리하게 바꾸면서 청년도 모인다. 이들이 농업과 농식품 전반의 발전을 이끈다.
배강찬 대표, 최덕현 이사는 인터뷰 내내 농촌 세대융합과 지역 상생이 중요하다며 이 부분을 강조해달라고 당부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경북 경산에서 맡은 향긋한 대추며 복숭아 내음이 코에서 가시지 않았다.
동아닷컴 IT 전문 차주경 기자 racing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