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열 정치부 차장
2018년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과 맞붙을 뻔했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네거티브 전략의 일환으로 일찌감치 이재명 대항마로 최중경 카드를 검토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경기도지사 선거는 ‘경기의 자존심’(최중경) 대 ‘경기의 잡놈’(이재명)의 대결 구도로 가야 이긴다”며 프레임을 짜고 들어갔다. 경제 관료 출신의 국제금융 전문가라는 압도적 스펙, 이미 국회 인사청문회도 거쳐 별로 털어낼 것 없는 사생활의 최중경이라면 ‘형수 쌍욕’ ‘여배우 스캔들’을 달고 다닌 이재명을 검증 이슈만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혼과 아들 문제 등 각종 사생활 스캔들이 많았던 현역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바른정당을 탈당해 복당하자 스텝이 꼬였다. 최중경 남경필 두 사람의 담판으로 남경필이 당 후보가 된 뒤, 한국당은 마지막 네거티브 카드로 뒤집기를 시도했다. 선거 불과 열흘 전 당 공식 홈페이지에 이재명의 ‘형수 쌍욕’ 음성 파일을 전격 게재한 것. 논란이 들끓는 와중에 치러진 선거 결과는 이재명 56.4%, 남경필 35.5%였다.
대선이 8개월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재명의 여배우 스캔들, 윤석열의 ‘X파일’ 의혹 등 네거티브 이슈로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다. 물론, 사실에 입각한 후보 검증은 언론이나 경쟁 후보들의 임무이고, 당사자는 이를 해명해 국민의 의문을 풀어주는 게 선거의 한 과정이다.
하지만 구태 정치의 모습들이 스멀스멀 다시 나타나고 있다. 치밀한 검증을 거친 팩트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묵은 의혹들을 재탕 삼탕 떠들어대는 후보도 나오고, 밑도 끝도 없이 “X파일 내용을 보니 위험해 보이더라”며 애매한 위기감을 조성하는 행위도 이어진다.
문제는 ‘닥치고 네거티브’ 공세가 대선 판의 주연이 돼버리면 각 후보가 만들고자 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같은 중요한 이슈는 묻히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TV토론을 수차례나 했고 야권 대선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도, 이재명의 공약이나 윤석열표 정책이 딱히 쟁점이 된 적도 없다. 시중에선 “머리에 남은 건 ‘바지’와 ‘쥴리’뿐”이라는 말만 나돈다.
대선 후보들이나 정당은 타율 낮은 김대업식 요행을 바랄 게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 세상에 대한 비전을 어떻게 돌풍으로 증폭시킬지 치열한 궁리를 더 해야 한다. 그게 ‘바지’나 ‘쥴리’보다 내 삶이 어떻게 바뀔지에 더 관심이 많은 국민의 선택을 받는 길이다.
최우열 정치부 차장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