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국 동시 임상3상 진행, 환자 115명 대상 국내 5개 대학병원서 청춘을 바친 루게릭병 치료제 개발에 19년 세월 투자 한양대병원 신경과 김승현 교수와 2003년부터 협업 “내가 번 돈 모두 희귀질환연구재단에 쓸 것”
김경숙 코아스템 대표가 7일 경기도 판교 회사 사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 대표는 “루게릭병 환자에게 치료제는 한 가닥 희망이자 빛줄기”라며 19년 동안 치료제 개발에 매진해온 이유를 밝혔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지난 19년 동안 희귀난치성 질환인 루게릭병을 치료하는 데 청춘을 바친 의사가 있다. 2003년 회사 창립 후 10년 가량은 회사에서 월급 한 푼 받아가지 못했다. 그래도 꿋꿋이 버틴 것은 오로지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를 고쳐보겠다는 일념이었다.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 부처에서 그의 뛰어난 역량과 전문성을 믿고 국책사업 과제로 밀어주면서 정부 돈으로 지원한 덕분에 그동안 버틸 수 있었다. 연구자의 삶을 살면서 청춘을 바친 끝에 2015년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 시장에 진출하게 됐다.
편안한 의사의 길을 뿌리치고 왜 고생을 사서 하는지 주변에선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제 줄기세포로 루게릭병 환자를 치유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인 임상3상 시험을 지난해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승인 받고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고 있다. 많은 루게릭병 환자들과 가족들이 이 시험의 성공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줄기세포로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겠다는 도전은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가느다란 삶의 희망이자 한 줄기 빛이기 때문이다. 한양대 의과대학에서 학사와 석 박사를 받은 김경숙 코아스템 대표를 7일 경기도 판교 사무실에서 만났다.
●‘닥터 퀸’ 드라마에 감명 받은 의학도
경기도 용인에 있는 GMP 제조시설에선 줄기세포 치료제 생산과 품질관리 및 출하 업무를 맡고 있다. 루게릭병 환자가 오전 10시에 치료 받으려면 새벽 1~2시부터 직원들이 준비를 해야 한다. 코아스템 제공
‘의사가 되면 어떤 삶을 살 것이냐’고.
“당시 ‘닥터 퀸’이라는 법의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해외 드라마가 있었어요. 참 재미있게 봤는데, 수술을 하거나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 행위보다는 의학 기술을 통해 환자 치료나 진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더욱 흥미가 있다고 대답했어요.”
그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아닌 의과학자에 관심이 있었다. 한양대 의대 본과 2학년 여름방학 때 기초의학교실에서 연구를 하면서 논문을 썼다. 의대를 졸업한 1990년대 초반 기초의과대학 교실에서 또 다시 논문을 쓰는 과정에 의사들의 진료에 도움이 되는 뒷배 역할을 하는 게 보람이 있었다고 한다. 화려한 무대 위의 주인공 보다는 장막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Lab Doctor가 좋았다. 한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길이니까.
그는 고교 때 아버지가 폐암에 걸리는 불운을 맞았다. 당시만 해도 의료보험 제도가 탄탄하지 않아 집안에 누군가 암에 걸리면 가세(家勢)가 휘청거렸다. 투병 끝에 돌아가셨지만 병원비에 1억원 가까이 썼다고 한다. 하지만 김 대표의 어머니는 “전혀 아깝지 않다. 그 돈이 지금 있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편 병을 고치려고 돈을 쓰지 않았다면 평생 후회하고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민감한 소녀 시절 아버지의 사망은 김 대표가 난치성 희귀 질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줄기세포로 난치병 치료에 관심
의대를 졸업 한 뒤인 1999년 사람의 배아 줄기세포에 대한 논문이 학계에서 발표됐다. 하지만 환자의 치료에 쓰이기까지는 요원한 일이었다. 한양대 의대 선배인 김승현 신경과학교실 교수가 루게릭병(ALS. 근위축성측삭경화증)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루게릭병은 몸의 골격근을 움직이게 하는 운동신경세포가 점차 사멸(死滅)해 온 몸의 골격근이 마비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발병 후 3~5년 만에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환자는 절박하고 별다른 치료 방법도 딱히 없다. 이 병에 관심을 갖고 있는 김 교수에게 루게릭환우협회에서 제도권에서 연구와 치료법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김경숙 대표는 “루게릭병이라는 희귀 질환을 치료하려면 질병을 동시다발적으로 공략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선 줄기세포가 가장 적합한 치료법이다”고 밝혔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불치의 난치병인 루게릭병을 고칠 수 있다는 다양한 유혹이 환자들을 괴롭히기도 한 시절이었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으니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김승현 교수와 함께 고민하던 김경숙 박사가 의기투합한 것은 줄기세포로 이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다. 초기부터 루게릭 치료를 연구해 온 김 교수와 함께 어떤 프로토콜로 임상과 연구를 진행할지, 어떤 줄기세포로, 그리고 어떤 용법으로 할지를 놓고 연구를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첫 해인 2003년 12월 김 박사는 코아스템이라는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을 하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본격 연구를 진행했다.
2006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9명의 루게릭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목적 사용의 응급 임상시험 승인을 받아냈다. 식물인간과 다름없는 중증환자 3명,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는 환자 3명, 발병 초기 환자 3명을 놓고 임상시험을 시작한 것이다. 루게릭병 환자는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 환자도 감각 기능은 살아 있다. 2년에 걸쳐 한 응급임상 시험에 이어 37명으로 대상을 확대해 연구자임상 시험으로 확대했다. 초기와 중기 환자의 경우 진행 속도가 완화되고 침을 흘리는 증상이 감소하면서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을 관찰하게 됐다.
이번에는 호흡기에 의존하는 중증 환자를 제외하고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이어진 이 임상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한 결과 절반은 병세가 나빠지는 속도가 완화된 반면 나머지 절반은 악화 추세가 계속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연구는 유의미한 결과였다.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 내 창업보육센터에서 시작한 코아스템은 두 차례의 루게릭병 임상시험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게 되면서 보건복지부로부터 50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아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임상1상과 임상2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왜 루게릭병인가
흔히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ALS는 중추신경계 운동신경원세포가 밝혀지지 않은 원인으로 급성으로 사멸해 사지 마비와 호흡근 마비를 일으키는 난치성 희귀질환이다. 세계 ALS 환자는 인구 10만 명당 1,2명으로 총 35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한국에선 해마다 900명의 루게릭 환자가 발생한다. 발병 후 평균 3~5년 안에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새로 생기는 환자도 있어 국내에선 평균 2500~3000명의 루게릭병 환자가 생존해 있다.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중앙연구소에 있는 R&D센터에서는 세포주 개발과 임상시험 제조공정 개발 업무를 맡고 있다. 코아스템 제공
김 박사는 한양대 신경과 김승현 교수와 함께 협업해 루게릭병을 연구해왔다. 병이 어떻게 진행되고 환자 상태가 어떤지 등을 살피는 임상을 김 교수가 진행했다. 루게릭병을 고치려면 동시다발적으로 병의 원인을 무너뜨려야 했기 때문에 줄기세포를 이용한 방법이 최적이라고 판단하게 됐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처럼 사지가 마비된 환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기적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대신 증상이 조금씩 개선되는 것을 연구와 치료의 목표로 삼았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쥐를 대상으로 줄기세포로 동물실험을 한 결과 잘 못 걷던 쥐가 다시 걷고 죽어가던 쥐가 살아나는 동물실험에 성공했다. 두 사람은 유전적 질환에는 줄기세포 치료가 통하지 않는 사실을 발견하고 증상을 완화하는 것에 연구와 치료의 초점을 뒀다. 줄기세포가 분비하는 좋은 인자가 병의 진행을 완화하는 것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코아스템은 2014년 식약처로부터 루게릭 줄기세포치료제인 뉴로나타-알주 의약품 제조판매 허가를 받고 2015년부터 시판을 시작했다. 시판을 조건으로 임상3상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엔 미국 FDA로부터 3상 임상시험을 승인 받고 115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하고 있다. 임상1상은 안전성을 테스트하고, 임상2상에선 안전성과 함께 치료 효과를 병행해 측정한다. 임상1상과 2상을 통과했다는 것은 의약품의 안전성과 치료 효과가 입증됐음을 뜻한다. 마지막 단계인 임상3상에서는 표본 수를 늘려 안전성과 치료 효과를 유의미한 숫자에서 적합한지를 따지게 된다.
●발병 초기 환자에 효과
지금까지 임상시험에서 부작용은 없었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약품의 안전성 측면에서는 부작용이 없음이 입증된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시험에서 드러난 것은 중증 환자의 경우엔 효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김 대표는 “발병 초기의 루게릭병 환자가 이 약품의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환자에겐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약품 시판 후 치료를 받은 400명 환자 중 상당 수 환자의 경우 병의 진행 속도가 늦춰졌다고 한다. 한양대병원을 비롯해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고려대 안암병원, 부산대병원 등 5개 대학병원에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모두 발병 초기 환자들이 시험 대상이다. 경기도 분당구 판교에 위치한 코아스템 본사에는 전략사업팀과 마케팅팀 경영지원팀 등이 일하고 있다. 코아스템 제공
완치도 아니고 병의 진행 속도를 더디게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김 대표는 “난치병 환자의 고통은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면 3~5년 고통 속에서 사망하는 환자의 삶의 질이 급격하게 향상될 수 있다. 1년을 연장한다는 것은 환자에게 엄청난 의미가 있다. 그것도 중증으로 악화되기 전에 초기에 제대로 치료한다면 루게릭병 환자도 큰 고통을 겪지 않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막대한 비용이다. 1회 시술에 2500만 원가량 치료비가 필요하다. 5회 시술을 하면 1억원이 넘는 돈이다. 난치성 희귀질환이라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미국인의 경우 사(私)보험 혜택을 받으면 비용이 급격히 줄어든다. 하지만 높은 비용은 국내 루게릭 환자에겐 여전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맞춤형 치료제다 보니 가격을 내리는데 한계가 있다”며 “루게릭병 외국인 환자가 많아 가격 저항이 없는 글로벌 시장에서 돈을 벌면 한국 시장에선 차별화 전략으로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 선고보다도 더 무서운 게 루게릭병이라고 한다. 아직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바이오 벤처기업은 연구개발 투자에 많은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서 “올해 100억원의 투자를 해야 해 적자 상태지만 임상3상이 통과되면 막대한 매출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재 털어 희귀질환연구재단 설립 지원할 것
김경숙 대표는 “줄기세포 치료제로 번 돈은 모두 희귀질환연구재단 설립과 운영에 보태고 기초연구와 임상연구를 지원하는 데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김 대표는 루게릭병이라는 희귀질환 치료를 위해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의사라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고 이처럼 험한 길을 걸은 것이 후회는 되지 않을까.
“환자가 오전 10시에 치료를 받으려면 용인의 연구소 직원들은 새벽 1~2시부터 시술을 준비해야 합니다. 골수를 채취하고 환자의 절박함을 보면 마치 내 부모나 형제자매가 아픈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몸이 성한 상황에선 환자를 위해 당연히 희생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입니다.”
김 대표는 최근 사재(私財)를 털어 희귀질환연구재단 설립을 목표로 기초연구와 임상연구를 지원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루게릭병 치료제에서 번 돈을 젊은 연구자들이 기초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코아스템 대주주이자 대표가 된 것은 연구자들을 활용해 성취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온 것도 기적 같은 일입니다. 제가 번 돈은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아이들에게 일찌감치 얘기해놨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학교와 병원을 짓고 연구자들이 돈 걱정 없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쌀 한가마라면 좋지만 콩 한 톨이라도 나눈다면 의미가 있겠지요.”
창업 후 10년 동안 월급 한 푼 집에 가져가지 못했다는 김 대표는 루게릭병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다고 해도 대부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다짐했다. 늦은 시각 판교 사무실을 떠나면서 66명의 직원과 연구진이 있는 코아스템의 뜨거운 열정과 헌신이 우리 사회를 밝게 비춰주는 듯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