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방한 당시 ‘심판의 날 항공기’로 불리는 핵공중지휘통제기(E-4B)를 타고 경기 평택시 오산공군기지에 도착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오른쪽). 동아일보DB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이 항공기는 핵전쟁 상황에서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폭격기, 핵잠수함 등 주요 핵전력과 모든 육해공 부대를 위성망으로 실시간 지휘할 수 있다. 기체 안팎에 핵폭발 때 발생하는 강력한 전자기파(EMP)로부터 각종 전자장비를 보호하는 방어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다. 북핵 위협의 고도화 국면에서 미 국방 수장의 E-4B 방한은 ‘핵 도박’을 엄두내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로 해석됐다.
실제로 핵폭발로 인한 EMP는 핵무기 자체의 파괴력만큼이나 치명적이다. 모든 종류의 전자통신장비의 내부회로를 태워버려 복구 불능 상태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핵폭발 EMP는 미국이 1962년 7월 태평양 400km 상공에서 터뜨린 1.4Mt(메가톤·1Mt은 TNT 100만 t의 폭발력)급 수소폭탄 실험으로 그 존재가 처음 확인됐다. 당시 실험 장소에서 1440km 떨어진 하와이 호놀룰루 시내의 전자기기와 신호등, 전화교환국 설비, 도난경보 시스템 등이 고장 나 일대 혼란을 빚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미국과의 ‘대화’를 거론하면서도 특히 대결에 빈틈없는 준비를 강조한 것은 언제든 고강도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로 봐야 한다.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대북제재 등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핵고도화를 과시할 ‘도발 카드’를 휘두르겠다는 것이다. 집권 이후 핵무기의 ‘다종다양화’에 주력하고 올해 초 신년사에서 전술핵 개발까지 지시한 김정은이 EMP 공격을 유용한 ‘핵옵션’으로 여길 소지가 크다고 필자는 본다.
군 일각에선 북한이 한국을 겨냥한 EMP 공격을 이미 작전계획으로 구체화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북한이 20kt(킬로톤·1kt은 TNT 1000t의 폭발력)급 소형 핵탄두를 동해 40∼60km 상공에서 터뜨리면 한국 전역의 전자장비를 탑재한 무기가 먹통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전쟁지휘 시설뿐만이 아니라 전기·통신·교통·금융 등 주요 기간망이 파괴돼 국가 기능이 마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대미 핵위협도 차원이 달라진다. 초강력 EMP탄을 실전 배치하면 핵탄두의 대기권 재진입(RV)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지 않아도 핵 타격에 버금가는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 본토 400km 상공에서 초강력 EMP탄 1발을 터뜨리면 전역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한다. 북한 노동신문이 2017년 김정은이 핵무기 연구소를 방문해 ‘수소탄’을 둘러본 사실을 전하면서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 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 위협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미국은 북한의 EMP 공격을 가능성이 아닌 기정사실로 보는 분위기다. 2019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적성국의 EMP 공격에 대한 국가 기간 시설의 방어 대책을 지시했고, 올 3월 미 공군은 EMP 공격에 대한 보완조치를 의뢰하는 사업에 착수하기도 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