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엔진을 길들이려면 주행거리 10만km는 달려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10만km는 지구 두 바퀴 반에 해당되는 엄청난 거리다. 그 정도로 혼다 차량의 내구성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국내에서는 약 10만km 주행거리면 신차 교체가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혼다 차주들은 장기 고객이 꽤나 된다. 혼다가 이런 고객들을 따로 관리하는 ’마일리지 클럽‘을 마련한 이유기도 하다. 혼다마일리지 클럽은 신차 구입 기준 30만km, 모터사이클의 경우 10만km을 주행한 소유주부터 해당된다.
혼다의 덕목 중 하나인 내구성에 이동 수단으로서 최고의 기본기를 갖춘 차가 바로 ’파일럿‘이다. 초대형 SUV인 파일럿은 뛰어난 공간 확보는 물론, 부족함 없는 주행 성능과 부드러운 승차감이 어우러져 운전자 만족도를 크게 높였다.
이 차는 공간활용성을 극대화하는 혼다 패키징 기술을 바탕으로 넉넉한 승차공간을 확보했다. 파일럿 좌석은 2+2+3 구조다. 3열은 성인 3명이 타도 여유롭다. 무릎이나 머리 공간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워낙 널찍한 공간 덕분에 각종 수납도 수월하다. 사방이 수납공간이다. 센터 콘솔에는 태블릿 PC도 들어간다.
좌석을 접으면 공간을 더 넓힐 수 있다. 트렁크 기본 적제 공간(467리터)에 3열을 접으면 1325리터까지 늘어나고, 중간 2열까지 확보할 경우 2376리터의 광활한 자리가 마련된다. 이렇게 공간을 확보하고 2열 루프 상단에 적용된 10.2인치 모니터를 활용하면 순식간에 가족 전용극장으로도 탈바꿈할 수 있다.
3열에 앉기 위해 2열 시트를 조절해보니 다른 차종보다 훨씬 수월하다. 시트 바깥쪽에 붙어 있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시트의 고개가 젖혀지고 앞으로 좌석이 쉽게 밀려 3열 진입을 용이하게 만든다.
적재함은 용도에 따라 히든 카고와 톨 카고 모드 선택이 가능하도록 했다. 3열을 손대지 않아도 80리터 대형 아이스박스나 유모차도 쉽게 실을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이번 파일럿은 2015년 3세대 부분 변경을 거친 모델로, 승하차 시 발을 딛기 쉽게 ‘러닝 보드’를 새롭게 장착했다. 또 러닝 보드 하단에는 조명을 적용해 승하차 시 노면을 밝게 비춰줘 고급 감성과 안전성에 신경을 썼다.
파일럿을 직접 몰아 보니 부드럽게 나가는 힘이 제일 먼저 느껴졌다. 가솔린 모델답게 정숙성도 있었다. 차체 크기에 비해 무겁고 육중하단 느낌은 덜했다. 속도를 올려도 변속에 의한 흔들림이 없어 부드러운 주행을 도왔다. 파일럿 V6 3.5리터 직접분사식 i-VTEC 엔진은 최고출력 284마력, 최대 토크 36.2kg.m를 발휘한다. 웬만한 고성능차에 버금가는 제원이다.
노면 진동과 충격은 독립식 서스펜션 구조로 억제시킨다. 전방 서스펜션은 맥퍼슨 스트럿 타입으로 뛰어난 코너링을 제공하고, 후방은 멀티 링크 트레일링 암 리어 서스펜션으로 진동과 충격을 효율적으로 흡수한다. 덕분에 과속방지턱이나 험로를 지나가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다양한 운전자 보조 시스템은 운전의 피로를 줄이는 데 주효했다. 핸들 오른쪽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차선유지보조시스템(LKAS)’과 ‘자동감응식 정속 주행 장치(ACC)’라는 초록색 표시가 계기반에 나타난다.
LKAS는 시속 70∼140km에서 주행하면 차량이 차선을 인지해 주는 기능. 차선을 넘어가면 자동으로 운전대를 꺾어 조향을 돕는다. 스티어링휠에 달린 ‘+’, ‘-’ 버튼으로 주행 속도를 조절하면 가속페달을 밟지 않고도 속도를 유지하는 ACC 기능이 실행된다. 앞차가 멈출 경우 거리를 유지하며 감속할 만큼 작동은 민첩했다. 이러한 혼다 센싱을 활용하자 서울에서 전주까지 왕복 500km가 넘는 장거리를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