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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김희균]공영 없는 공영 방송

입력 | 2021-07-14 03:00:00

편파 방송 대가가 개인의 영달
이런 선례에도 수신료 내야 하나



김희균 문화부장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경찰이 경찰청 교통국장이 될 수 있을까? 논문 표절이 드러난 교수가 대학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위원장이 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요즘 같아선 그럴 수도 있다. 편파 방송 이력으로 비판받는 사람이 방송의 공정성을 심사하는 기관의 장이 될 세상이니 말이다. 연초부터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해둔 문재인 대통령은 조만간 상식을 뛰어넘은 인선을 강행할 예정이다.

수신료 인상을 추진 중인 KBS 역시 상식에 반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나운서가 뉴스 원고를 정부에 유리하게 마구 고쳐 읽어도, 설 특집 국악 프로그램 무대에 일본 성(城)을 세워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내는 수신료도 아깝다는 사람들이 천지인데, KBS는 이를 52%나 올리겠다면서도 개전의 정이 없다. KBS의 수신료 조정안을 보면 공정성 회복이나 경영 효율화에 대한 항목은 드물다. 2022년부터 5년간 쓰겠다는 1조9015억 원 가운데 ‘공정·신뢰 저널리즘 구현’에는 가장 적은 265억 원을 배정했다. 예산을 많이 배정한 과제는 대부분 몸집과 서비스를 늘리는 것들이다. 심지어 당초 추진안에서는 평양 지국 개설, 평양 열린음악회, 평양 노래자랑에 수십억 원을 배정했다가 공론조사에서 비판을 받고 지웠다.

수신료 인상 명분이 이런데도 양승동 KBS 사장은 굳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수신료를 올리더라도 광고를 줄일 수 없으며, 수신료 회계도 분리할 수 없노라고 선언했다.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수신료를 더 내면 광고라도 좀 덜 봐도 되느냐고 묻는데 안 된단다. (이윤 추구 플랫폼의 대표 격인 유튜브도 월정액을 내면 광고를 아예 안 봐도 된다. 수신료를 올려도 유튜브 월정액보다 싸다고 반박할지 모른다. 하지만 콘텐츠의 양과 질이 비교 불가인 건 둘째 치고, 유튜브는 적어도 내가 보지도 않는데 혹은 내 동의 없이 전기료에 돈을 얹어 가진 않는다.)

일반인의 눈높이에선 이해가 안 가는 행태다. 하지만 현직자의 눈높이에서 정권에 충성한 전임자의 행로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노무현 정권 시절 편파 방송에 앞장선 덕분에 십수 년 만에 방심위원장으로 화려한 컴백을 기다리는 전임자. 공보다는 사를, 국민보다는 정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학습하기에 이보다 좋은 선례는 없다.

이런 선례가 쌓여 공공의 번영(共榮)을 위해 공공이 운영하라고(公營) 만들어 놓은 KBS는 소수가 사욕을 채우는 곳이 되어버렸다. 2020년 KBS가 거둬들인 수신료가 6700억 원인데, 인건비가 이에 맞먹는 5200억 원이다. 직원 4700여 명의 평균 연봉이 1억 원이 넘는다. 오죽하면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나온다. 이달 1일 내부 게시판 KOBIS에 ‘염치없는 수신료 인상에 반대한다’는 글이 올라오자 당일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다. 글쓴이는 ‘방만 경영이란 비판보다 아픈 것은 권력의 주구라는 비판이다.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 각종 비판 보도가 청와대 반발과 어용 지식인의 한마디에 무너졌다. 수신료 인상에 국민적 공감은커녕 KBS 구성원 상당수의 공감도 없다’고 진단했다.

KBS의 꿈대로 수신료를 52% 인상하게 된다면 연간 수신료 수익만 1조 원을 훌쩍 넘어선다. 지상파 중간광고까지 허용된 마당에 광고 수익은 또 따로 챙긴다. 이 막대한 돈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정하게 쓰일 거라 기대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