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쉽게 지루해하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지루한 것을 견뎌내는 것은 주의력에서 무척 중요한 기능이다. 주의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쉽게 지루해한다. 학습은 반복을 통해 실력이 향상된다. 당연히 지루한 것도 반복해야 한다. 머리는 좋아도 주의력이 떨어져 지루하게 반복하는 것을 싫어하면 학습을 잘 해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이런 아이에게 교사가 문제를 내면서 “이거 굉장히 어려운 문제야. 이것 풀면 엄청 머리 좋은 거야”라고 한다. 그러면 갑자기 동기가 생기면서 그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흥미나 동기가 아니면 과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주의력이나 에너지를 기울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아이 혼자만 문제를 풀겠지만, 교사가 개념을 설명하면 다른 아이들도 전부 풀 수 있게 된다. 이후 다른 아이들은 그 문제를 여러 번 반복해서 풀기 때문에 점점 푸는 시간이 짧아지고 실수도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은 여러 번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무척 지겨워한다. 그래서 풀수록 틀린다. 가장 처음 풀었을 때가 가장 좋고 이후로는 실력이 뚝뚝 떨어지게 되기도 한다.
머리가 좋고 주의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보통 초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잘하기도 한다. 아주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중학교 때까지는 버틴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의 양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공부는 워낙 지루한 과정이다. 지루한 것을 못 견디면 머리가 좋아도 좋은 성적을 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아이의 주의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 되도록 초등학교 시기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중고등학교 공부에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나는 이런 상황을 거의 매일 목격한다. 부모와 상담을 좀 하려고 아이에게 잠깐 진료실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면 거의 모든 아이가 나가면서 “엄마, 나 그럼 스마트폰”이라고 말한다. 내가 부모에게 주지 못하게 하면 아이가 “왜요? 원장님, 왜 주지 말라고 해요?” 하면서 화를 내기도 한다. “기다려. 금방 끝나. 원장님은 그렇게는 안 해. 원장님은 스마트폰을 도우미로 사용 안 해”라고 정확히 얘기한다. 그 대신 대안을 준다. “너 나가면 다른 선생님이 종이접기도 하고 놀아 줄 거야”라고 하면 아이가 툴툴거리면서 나간다. 그때 아이한테 “고마워” 하고 말해준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이렇게 선을 그으면서 분명하게 말하면 다음에 와서 스마트폰 달란 말을 안 한다. 아이들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지루하고 힘들고 짜증이 치밀어도 이 또한 감당해 내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겨내는 능력도 생긴다.
그렇다면 이런 아이들에게 반복해서 점차 나아지는 공부 습관을 어떻게 만들어줄까? 이것을 공부로 가르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운동이나 악기 연주 같은 게 좋다. 운동은 일정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똑같은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자신이 노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때 부모가 아이한테 “너 지난번보다 많이 잘하는구나” 하는 말을 자주 해주면서 가르치면 된다. 피아노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여러 번 쳐서 나아지는 것처럼 수학 문제도 여러 번 풀어야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게 한다.
목표를 완벽으로 잡아서는 안 된다. 완벽하게 이해시키기 위해 입이 닳도록 백번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아이가 요청할 때 이야기해 주는 식이 낫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운동했을 때의 경험을 예로 들어 뭐든 반복해야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한 번 더 풀어보자”고 유도한다. 그렇게 설명한다고 해도 아이가 단번에 “아 그렇군요. 반복을 해야 잘하는 거네요” 하지는 않는다. 계속 하기 싫은 마음에 입이 쭉 나와 있을 수 있다. 그때 “야, 네가 얼마나 했다고 그래?” 하면서 맞대응하지 않아야 한다. 입이 쭉 나온 상태라도 아이가 한 번 더 해내면 “잘했어. 정말 해냈네” 하면서 진심으로 칭찬해 주는 것이 좋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