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사는 법] ‘청년 도배사 이야기’ 펴낸 3년차 도배사 배윤슬 씨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나와 취업…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일 찾으려 2년만에 사표 내고 도배사 전직… SNS에 ‘도배 일상’ 올리며 주목 한번 배우면 평생 할 수 있는 일… 꼼수 안 통하는 정직한 직업이죠
‘청년 도배사 이야기’를 쓴 배윤슬 씨가 13일 경기 지역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도배를 하고 있다. 배 씨는 “차가운 시멘트벽이 제 손을 거쳐 아늑해지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며 “도배를 하며 정신적으로도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배윤슬 씨 제공
어렵게 들어간 첫 직장을 퇴사한 20대 청년은 흔히 있다. 높은 보수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등 퇴사 이유는 다양하다. 그런데 이 경우는 좀 특이하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노인복지관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2년 만에 사표를 냈다. 도배사가 되겠다면서. 한 달간 도배학원을 다니고 2019년 가을부터 아파트 건설 현장에 투입됐다. 2년간 8곳의 현장을 누비며 자신의 팀을 꾸려도 될 만한 도배사로 성장했다. 5일 출간된 ‘청년 도배사 이야기’를 쓴 배윤슬 씨(28·여) 이야기다.
배 씨는 11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20대 도배사의 직업 생활과 인생에 대한 고찰, 성장기를 담은 이 책이 직장인들의 관심을 이끌어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20대 도배사는 흔치 않잖아요. 이 나이대 여성은 더 희귀하죠. 특이한 경우라 제 얘기를 해봐야 공감받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직장인들이 많이들 공감하더라고요. 직장에 대한 회의와 불안, 이직 고민….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한국 회사는 실력보다 태도나 충성심을 더 중시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실제 성과보다 말로 과대 포장한 성과가 더 인정받기도 하고요.”
그는 스스로를 ‘조직 문화에 취약한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실력으로만 승부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았다. 그는 책에 도배 일을 ‘비교적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일’이라고 썼다.
“도배는 꼼수를 쓰면 도배지가 우는 등 바로 결과가 드러나요. 성과를 포장할 수도 없죠. 결과가 좋으면 태도나 과정은 문제 되지 않아요. 노력한 만큼 기술이 늘고 성장하는 재미도 있죠.”
그는 도배사라는 직업의 매력을 공유하고 싶어 2019년 말부터 자신의 ‘도배 일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글을 올린 지 5개월 후 궁리출판사로부터 “책을 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도배 일을 ‘언제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은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도배는 한번 배우면 평생 가는 가치 있는 기술인데도요. ‘몸 좋아졌겠다’는 사람들에겐 반대로 묻고 싶어요. ‘머리 쓰는 일 하시니까 머리 많이 좋아지셨겠네요’라고요.” 그는 책에 “몸이 점점 닳아가는 느낌이다. … 늘 무릎에 멍이 들어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부어 헐겁던 반지가 잘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썼다.
책이 나온 지금도 그를 따라다니는 질문이 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왜 도배사를 하느냐” “학벌이 아깝지 않느냐”는 것. 그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하건 발전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체돼 회의만 느끼며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아요. 도배는 갈수록 성장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거든요. 제가 하는 일이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선택한 ‘그런 일’이 아니라는 것, 더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