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사는 법] 실패 경험 담은 ‘이번 책은 망했다’ 펴낸 서울예대생 5人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망하고, 학폭 괴로움에 학교 그만두고 입시에 5번 떨어져도 절망 안해… ‘성공 아니면 실패’ 관념 벗어나 하고 싶은 일 시작한 경험 풀어… “실패 인정하고 나면 희망 보여”
에세이집 ‘이번 책은 망했다’를 펴낸 서울예대 문예학부 재학생 강민경 김준아 박인기 황윤선 씨(왼쪽부터). 황 씨는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도 망했던 경험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라며 “망한 기억이 긍정적 역할을 하지 않았는지 자문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윤선 씨 제공
중학생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두려웠다. 먹고살 걱정에 꿈을 접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며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았다. 처음으로 인생이 나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꿈꿔온 글쓰기를 배우려고 스물아홉 늦은 나이에 대학 문을 다시 두드렸다. 회사는 망(亡)했지만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소망(所望)은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예대 문예학부에 시간제로 재학 중인 황윤선 씨(30·여)가 신간 ‘이번 책은 망했다’(망 출판사)에 쓴 내용이다. 제목은 젊은 세대가 자신의 삶을 자조하며 쓰는 ‘이번 생은 망했다’(이생망)를 풍자한 것이다. 그는 12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나 같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갖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한다”며 “누군가는 자신밖에 모르는 젊은이의 치기로 볼지 모르지만 나는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용기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신간은 황 씨를 포함해 서울예대 문예학부 재학생 5명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이다. 이들은 올 6월 출판사를 차린 직후 이 책을 냈다. 1991년생부터 2000년생까지 MZ세대 젊은이들이 모여 자신의 삶에서 망했던 일과 의미, 이후의 삶을 다뤘다. 황 씨는 “MZ세대는 개인의 취향을 존중받으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선택지에 길을 잃고 방황한다”며 “우리 세대가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너무 매몰돼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름의 방법으로 실패에 맞서거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포기하지 않기도 한다. 정혜성 씨(25)는 시험을 망친 후 텀블러를 가방 왼쪽에 넣고, 뚜껑에 곰 그림이 있는 향수를 뿌린 뒤 노란색 양말과 검은색 신발을 신는 유별난 규칙을 만들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방법을 찾는다. 김준아 씨(22·여)는 대입 수시 3번, 정시 2번의 실패를 겪은 끝에 마침내 바라던 서울예대에 입학한 뒤 환호했다. 김 씨는 “안정적인 다른 길을 찾으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내가 들어가고 싶은 학교에 들어가려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망랑이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