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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문 정권의 거짓말, 백신뿐이던가

입력 | 2021-07-14 14:40:00


이건 사기다! 12~17일까지라던 55~59세 모더나 백신 접종 예약이 14시간 만에 종치자 나는 혼자 부르짖었다.

1962~66년생 인구가 352만4000명이다(나도 여기 해당된다). 당연히 모더나 352만4000만 명분을 확보해놓고 예약 받을 줄 알았다. 이 당연한 상식을 문재인 정부는 사정없이 깨버린 것이다.

올해 5월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 국민이 분노하는 건 거짓말 때문
12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도권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 “방역을 짧고 굵게 끝내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엄숙하게 선언했다. 낯이 좀 간지럽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예약에 성공한 절반의 50대 후반이 백신을 맞는다 해도 7월말이나 돼야 가능하다. 26일까지 2주간 아무리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해도 4차 대유행을 잠재울 순 없다는 얘기다.

김부겸 총리가 14일 오후 8시부터 접종 예약을 재개한다고 밝히긴 했다. “도입 물량에 차질이 생긴 것이 결코 아니고 행정 준비에서 사려 깊지 못한 점이 있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문 정권은 아직도 뭐가 잘못인지 모르는(실은 모르려고 안간힘 쓰는) 눈치다.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문 정권의 거짓말 때문이다. 여기서 거짓말이란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실을 말했는데 사실 아님이 드러났을 경우, 우리는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는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는 말’이 거짓말이다.

● 대통령이 나서 백신 구매 앞당겼다며?
즉 거짓말의 핵심은 거짓말하는 사람이 사실을 알 뿐 아니라 사실을 존중한다는 데 있다. 거짓말로 밝혀지면 사과하는 시늉이라도 한다. 그게 거짓말계의 예의고 상식이다.

문 대통령은 작년 12월 28일 모더나 대표이사와 화상 통화를 하고는 모더나 백신 4000만 회 분을 2021년 2분기, 그러니까 4월부터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구매 물량 확대와 함께 도입 시기도 당초 내년 3/4분기에서 2/4분기로 앞당겼다”고 청와대는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것이 팩트다.

정부가 모더나 백신 2000만 명(4000만 회) 분을 도입한다고 발표한 사실을 보도한 동아일보 2020년 12월 30일자 지면.



12일 드러난 사실은 딴판이었다. 이미 들어와 있는 물량은 달랑 80만 회분(40만 명)이고 일정이 확정된 것도 105만 회분(52만5000명)에 불과하다. 그럼 작년 말 그 요란한 청와대 발표는 거짓말이 아니고 뭐냔 말이다.

● 거짓말 변종…대안적 사실은 더 무섭다
거짓말 역시 바이러스처럼 변종이 더 무섭다. 2005년 미국 프린스턴대 철학과 명예교수 해리 프랑크푸르트는 ‘On Bullshit’이라는 책을 썼다. 뉘앙스를 살려 옮긴다면 ‘X같은 소리에 대해’쯤 된다. 거짓말과 X같은 소리의 차이는 진실을 존중하느냐다. X같은 소리를 하는 자는 설사 진실이 드러나도 그게 뭐 중요하냐고 주장한다는 거다. 그래서 듣는 이들은 X같은 자라며 돌아선다.

코로나19 변종 같은 최신 거짓말 변종은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다. 문 정권은 거짓이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사실처럼 주장하고, 듣는 문파는 기꺼이 속아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부당 조기 폐쇄 의혹, 조국 일가 의혹 등 문 정권 비리 의혹 사건이 여기 속한다.

청와대는 ‘결백’이라는 대안적 사실을 주장하며 ‘윤석열 검찰’을 ‘적폐청산’했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야당과 국민은 정권교체를 통해 정의와 진실을 구현하려 든다. 과연 사필귀정(事必歸正)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 대통령 취임사부터 거짓말 행진곡
코로나19 변종처럼 거짓말 변종도 하나에서 그치지 않는다. 문 정권의 치명적 문제는 ‘대안적 믿음’을 말한다는 데 있다. 그것도 남들이 다 믿어야 마땅하다는 듯 당당하게 말한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는 믿음, 소주성(소득주도성장정책)만이 옳은 경제정책이라는 믿음, 한명숙 전 총리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믿음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 최근 정부의 취업대책에 실망한 청년층으로부터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은 어디 갔느냐”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취임사부터 문 대통령은 대안적 믿음을 말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부터 “광화문 시대 대통령이 되어 국민들과 가까운 곳에 있겠습니다”, “따뜻한 대통령 친구같은 대통령으로 남겠습니다”까지. 지금은 단 한 대목만 빼고 모조리 거짓말이라는 농담 같은 진담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닌다.

그 한 대목은 바로 “지금 제 가슴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나라가 정말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긴 하지만, 절대 가볍게 받아넘길 수 없는 의미가 내포돼 있어 두렵다.

●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
백 살이 넘은 ‘국민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해준 말씀이어서 더욱 그렇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라고 하지요. 그게 유토피아 개념에서 나온 겁니다. 우리가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게 되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라고 하는 거죠. 김일성이 이야기하는 게 뭔가 하니, 우리가 해방되면 과거와는 달리 삶을 살게 된다는 거지요.”

지난 3월 북한인권법 통과 5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북한이 고향인 그는 북한이나 중국 같은 공산주의 국가엔 자유가 없고 진실이 없다며, 그걸 권력자들도 안다고 했다. 그래야만 정권을 유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한민국 대통령이 사회주의를 하겠나 싶지만, 권력자의 거짓말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2018년 9월 19일 평양 능라도 경기장을 가득 메운 15만 평양 시민들은 북한 지도자와 남쪽 대통령에게 열렬한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나는 그것이 북한 주민들의 자유롭고 진실한 표현이라고 결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민족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나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봤다”고 했다.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유토피아를 봤는지 알 수 없다.

2018년 9월 19일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북한 주민에게 손을 흔드는 문재인 대통령과 박수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대통령이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도 자유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유토피아를 다수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정책으로, 국시(國是)로, 심지어 도덕으로 강요하는 전체주의에 나는 반대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