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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상훈]코로나 취업빙하기 세대, 미래 닥칠 쇼크가 두렵다

입력 | 2021-07-15 03:00:00

이상훈 산업1부 차장


3, 4년 전 일본에서 ‘아라포 크라이시스’라는 신조어가 회자됐다.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당시 40세 전후의 ‘아라포(어라운드 포티)’ 세대들이 경제 사회적으로 처한 곤궁한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들의 위기는 1990, 2000년대 일본 경제 버블 붕괴에 따른 취업빙하기에서 시작됐다. 졸업 후 취업 기회를 놓친 이들은 좀처럼 일자리를 잡지 못했고 설사 취업을 했더라도 월급 인상, 승진을 기대하기 힘든 비정규직이 많았다. 일자리가 불안해 결혼도 어렵고 고령 부모가 큰 병에라도 걸리면 막대한 병원비, 간호 부담에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다른 나라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다. 일본 취업빙하기 못잖은 청년 실업이 오늘날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취업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이 덮치면서 취업준비생들 속은 그야말로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취업사이트 잡코리아의 구직자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41.0%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채용이 연기될까 봐, 40.2%는 경기 불황으로 기업 채용 자체가 줄어들까 봐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취업준비생들 걱정은 기우가 아니다. 기존 직원들도 돌아가며 휴직을 시켜야 할 기업들에 신규 채용은 언감생심이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중 직원 수가 공개된 309곳에서 올 1분기(1∼3월) 정규직 직원 수는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4분기(10∼12월)보다 1만1710명 줄었다. 1만 개가 넘는 양질의 일자리가 1년여 만에 증발해 버렸다.

500대 기업 밖으로 나가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19로 충격을 받은 일자리는 200만6000개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176만9000개)보다도 13.4% 많았다. 외환위기 때와 달리 해고보다 무급휴직 등을 한 사람이 늘어 타격이 덜하다지만 신규 채용만 놓고 보면 악재에 가깝다. 외환위기 때는 대량 해고로 발생한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위기 직후인 2000년대 초반 대규모 채용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휴직자 복직이 우선이라 취업준비생이 뚫어야 할 문은 그만큼 좁아지게 됐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한 치 앞이 불확실해진 기업들이 과거처럼 대규모 채용에 나서긴 쉽지 않다. 대기업 실적이 선방했다지만, 고용 창출 효과가 높은 서비스업 기업들은 여전히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오히려 소비자물가보다 3배 가까이 오른 최저임금, 잇따른 대기업 노조 파업 등이 기존 일자리를 흔들고 있다. 반기업 정서를 등에 업고 생겨나는 각종 규제들은 국내 사업장 해외 이전, 국내 투자 위축에 따른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고용 축소 직격탄을 맞은 세대의 후유증은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는다는 걸 일본의 아라포 크라이시스가 생생히 보여준다. 현금을 쥐여주는 것 말고는 체계적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한국에서 코로나19 일자리 쇼크가 미래에 어떤 충격을 가져올지 상상만 해도 두렵다.



이상훈 산업1부 차장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