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일본 도쿄 올림픽 개·폐회식이 열리는 주경기장인 국립경기장 모습. 10일 여행객들이 오륜 마크 조형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박형준 도쿄 특파원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기념촬영을 넘어 올림픽을 경험하기란 불가능하다. 국립경기장은 펜스가 쳐져 있어 접근할 수 없었다. 도쿄도에서 열리는 모든 경기는 무관중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직접 볼 수도 없다. 심지어 음식점에서 맥주 한잔 하며 응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긴급사태’가 올림픽 기간 내내 발령돼 술을 파는 도쿄 음식점은 문을 닫는다. TV로만 볼 수 있고, 응원 함성 없는 초유의 올림픽이 23일 막을 올린다.
축제 분위기 사라진 도쿄
인근의 또 다른 작품인 차(茶) 마시는 공간 ‘고안(五庵)’도 분위기가 비슷했다. 현장 접수처에는 지나가던 여행객들이 간간이 들렀다. 대기 줄이 생기는 경우는 없었다. 도쿄도 미나토구에서 왔다는 고바야시 유카 씨(32)는 “친구와 근처를 지나가다 이 시설을 오늘 처음 봤다. 왜 언론에 보도가 안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언론들은 13개 작품을 거의 소개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구멍, 백신 부족, 올림픽 불참 선언 등 올림픽 관련 새로운 뉴스가 연일 쏟아져 예술 작품에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발걸음을 각종 해양 올림픽 경기장과 선수촌, 메인프레스센터 등이 몰려 있는 도쿄 오다이바 인근 해변 도시로 옮겼다. 주말이었는데 의외로 사람들은 드물었다. 곳곳에 일반인 출입을 막는 펜스, 교통통제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선수촌으로 향하는 도로에선 경찰차 수십 대가 모여 테러 대비 훈련을 하고 있었다.
13일 선수촌이 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런 세리머니도 없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는 형형색색 의상을 입은 댄서들이 정열적인 춤을 추며 입촌하는 선수들을 맞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현지 연극단원들이 나와 공연을 했다.
올림픽 개최에 즐거운 IOC
9일 일본 아사히신문에 실린 만평.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도쿄 올림픽 관계자들이 모두 힘들어하지만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서핑을 즐기고 있다는 내용이다. 아사히신문 제공
이 만평에는 IOC에 대한 일본의 불편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IOC는 올림픽이 개최되기만 하면 거액의 방송 중계권료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도쿄에 긴급사태가 발령되든 아니든 상관없다. 개회식 때 일반 관중은 국립경기장에 입장할 수 없지만 IOC 위원들은 예외적으로 입장할 수 있다. 올림픽 1년 연기에 따른 추가 비용, 무관중으로 인해 날아가 버린 티켓 수입, 코로나19 방역 비용 등에 대해서도 자유롭다. IOC는 올림픽 개최 도시 계약에서 정한 일정액의 비용만 지불하면 되고 추가 비용은 모두 일본이 부담한다.
이 때문에 올림픽 반대 시위에는 “IOC 물러가라”는 구호가 빠지지 않는다. 바흐 위원장이 8일 일본에 입국했을 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일본에 안 왔으면 좋겠다”, “최악의 타이밍에 왔다” 등 부정적 의견이 잇달아 올라왔다.
점차 ‘기회’가 아니라 ‘위기’로
일본 정부 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올림픽 개최는 스가 정권에 위기이면서도 기회”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개최까지 가시밭길이지만, 일단 개최하면 스가 총리의 위기관리 능력이 돋보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시민단체 ‘올림픽 필요 없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는 9일 도쿄지방법원에 올림픽 취소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했다. 긴급사태 발령 아래 올림픽을 개최하면 코로나19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일부 극단적인 이들의 행동이 아니다. 전반적인 여론도 올림픽 개최에 부정적이다. 아사히신문의 6월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림픽 개최 찬성은 34%에 그쳤고 연기(30%)와 취소(32%)를 합해 62%나 됐다. 개회식을 불과 열흘 앞둔 13일 보도된 요미우리신문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취소 여론이 41%였다.
자민당 총재 선거 역사를 보면 현직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현행 선거 제도로 정비된 1972년 이후 총재 선거에 나선 현직 총리가 패한 경우는 1번밖에 없다. 9월 말이 임기인 스가 총리도 두 달 후 총재 선거에 나선다면 재선이 유력하다. 현재 자민당 내에 “스가 총리가 총선의 간판 얼굴로 힘들지 않겠느냐”는 의견은 있지만 총리 교체 목소리는 드물다.
하지만 올림픽 때 코로나19 상황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게 변수다. 국내 분위기를 띄울 호재로 여겼던 올림픽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돼 가고 있다. ‘누구를 위한 올림픽이냐’는 불만은 이미 일본 국내에 팽배해 있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