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립 협의 과정에서 여성도서관으로 방향 바뀌어 김 할머니 “규모 작으면 여성도서관이라도” 동의
여성도서관 건립식에 참석한 김학임 할머니. 충북 MBC 방송화면 캡처
충북 제천시에 있는 여성 전용 도서관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 권고를 받아들여 남성의 출입을 허용하면서 상황이 ‘젠더 갈등’ 양상으로 번진 가운데, 도서관 부지를 기증한 것으로 알려진 고(故) 김학임 할머니 유지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근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김학임 할머니는 시민들과 학생들을 위해 도서관을 기증한 것이지, 여성 도서관을 원한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들은 도서관 부지 기증자인 고 김학임 할머니의 과거 인터뷰 내용을 근거로 삼고 있다. 이런 주장은 사실일까.
제천시립도서관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제천여성도서관은 1997년 작고한 김학임 할머니가 기부한 11억 원 상당의 땅에 제천시가 8억 원의 예산을 보태 1994년 4월 개관했다. 제천시립도서관이 1996년에 문을 열기 전까지는 여성도서관이 시립도서관 구실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학임 할머니 생전 언론 인터뷰. 커뮤니티 갈무리
14일 충북 MBC가 공개한 생전 인터뷰에서도 김 할머니는 ‘도서관을 여학생용으로 지어달라고 하셨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니, 아니에요. 그거(기사) 잘못 썼습니다. 왜 여학생만 해요. 여학생 얘기도 안 했어요”라고 답했다.
충북 MBC 방송화면 캡처
그러나 할머니의 기증 이후 도서관 건립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여성도서관 건립으로 방향이 바뀌게 됐다. 일반 공용 도서관을 세우기엔 부지가 협소했고, 여성의 활발한 사회 참여를 독려하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1992년 건립추진위원회 회의록에도 ‘다른 지역보다 공간이 좁다’는 내용과 ‘규모가 작으면 여성도서관이라도 원한다. 내 뜻에 따라 달라’며 김 할머니가 동의한 기록이 남아있다. 김 할머니는 여성도서관의 건립식에도 참석했다.
‘규모가 작으면 여성도서관이라도 원한다. 내 뜻에 따라 달라’며 김 할머니가 동의한 회의록 내용. 충북 MBC 방송화면 캡처
제천여성도서관 측은 동아닷컴과의 통화에서 “충북 MBC가 공개한 영상은 확인했다”면서 “보도에 나온 회의록은 실제 회의록이 맞으며 해당 내용을 근거로 도서관을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도서관 관계자는 “당시 회의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은 지금 도서관에 남아있지 않다”며 “젠더갈등 문제로 번진 상황에 대해 전할 입장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자 인권위 공식 홈페이지에는 “기부자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 “설립목적을 무시하는 시정권고”라는 비판글이 다수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제천여성도서관의 남성도서서비스의 중단·폐지를 요구합니다’는 청원이 올라와 현재까지 4만60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김소영 동아닷컴 기자 sykim4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