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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즐거운 시간을 위하여[공간의 재발견]

입력 | 2021-07-16 03:00:00

정성갑 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계속 감각적 즐거움을 좇게 된다. 거의 주말마다 비가 왔던 지난 한두 달 동안은 밤마다 향을 피웠다. 그러다 보니 또 자연스럽게 음악을 찾게 되고 좋은 스피커가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소리가 쾌락임을 알게 된 지는 꽤 됐다. 잡지 기자로 일하던 시절 오디오에 빠진 남자들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그들이 들려준 세상은 신세계였다. 아티스트인 어떤 분은 소리에 빠져 예물인 금목걸이와 팔찌를 팔아 꿈의 오디오라는 마크 레빈슨 제품을 장만했다고 했다. 한 출판사 사장님 댁 거실에는 오디오 시스템이 쫙 깔려 있었는데 앰프만 4대였다. “LP는 그랜드캐니언 같은 거대한 골짜기에 음을 하나하나 새긴 거잖아요. 미세한 바늘 끝으로 그 음을 찾는 건데 갑작스럽게 증폭하면 소리가 다 망가져요. 헤드 앰프에서 1차, 포노 앰프에서 2차로 소리를 증폭한 후 프리앰프를 통해 소리를 다시 한번 끌어올리죠. 마지막은 파워 앰프에서 담당하고요.” 오디오 시스템 뒤로 뻗어 있는 구렁이 몸통만 한 케이블, 천장에 붙어 있는 음향 패널을 보면서 물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인터뷰 말미 그가 뮤지컬 ‘빨래’의 OST를 들려주었는데 하, 전율이었다. 평범하던 거실이 돌연 콘서트홀이 되고 내가 무대 중심에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 호흡을 고르는 가수의 숨소리마저 귓가에 생생하게 와닿았다. 어릴 때 형이 귀지를 파며 고막을 잘못 건드린 탓에 가는귀가 먹었음에도 불구하고(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소리의 쾌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최근 알게 됐다. 한 이비인후과 원장님의 특강을 들었는데 시각이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사실적으로 받아들이는 드라이 인포메이션(dry information)의 영역이라면, 청각은 미세하게 달라지는 소리의 깊이를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더 듣기 좋은 소리에 반사적으로 끌리는 웻 인포메이션(wet information)의 영역이라고. 동굴에 살 때부터 나를 위협하고 기쁘게 하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던 탓에 모든 인간은 촉촉함과 안락함을 선사하는 ‘꿀 사운드’에 무의식적으로 빠져든다고.

그 뒤로 좋은 오디오가 있는 공간을 몇 차례 경험했다. 좋은 소리와 음악이야말로 공간을 거의 즉각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마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이든 청각이든 하나의 감각만 만족스러워도 금세 행복해진다는 점에서 인간은 생각보다 ‘쉬운’ 존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얼마 전 입문용 스피커를 집에 들여놓은 후배는 “선배, 너무 좋아요. 집에 있는 시간이 더 좋아졌어요” 하고 말했다. 근래 가장 부러운 얼굴이자 표정이었다.


정성갑 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