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공개 누드모델 하영은 씨 최근 출간 에세이에 33년 경험 담아
누드 모델 하영은 씨는 “몸을 최대한 다양하게 쓰기 위해 액션과 춤, 연기까지 배웠다. 지금도 매일 전신 거울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하는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하영은 씨 제공
“우연히 살집이 있는 여성 누드모델이 포즈를 취한 모습을 봤어요. 모델인 저조차 그가 뿜어내는 포용력과 우아함에 순간 아기가 돼 안기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누드모델 하영은 씨(53)가 사람의 몸을 읽어내는 시선은 남달랐다. 1988년 누드모델 일을 시작한 그는 1996년 한국누드모델협회를 설립하면서부터 이름을 밝히고 활동하는 국내 1호 공개 누드모델이다. 그는 최근 에세이 ‘나는 누드모델입니다’(라곰)에서 33년간의 경험을 풀어 놨다. 그를 13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누드모델은 직업에 대한 오해가 매우 큰 일 중 하나예요. 순수예술에 가까운 작업이 포르노 취급을 받아 왔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을 예상했음에도 협회를 세운 건 누드모델들이 음지에서 활동하며 성폭력에 노출되고 모델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협회를 만들어 소속 모델들의 피해에 공동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히자 동료들은 환호했다. 현재 협회의 소속 모델은 500여 명. 하 씨는 “과거에 비해 나아진 면이 있지만 요즘 누드모델은 불법 촬영 및 유포라는 새로운 위험에 놓여 있다”고 했다.
그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누드모델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자신에게 영감을 얻은 사진가나 화가가 수작을 탄생시키는 순간에 중독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완성된 작품을 봤을 때 ‘건졌다’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누드모델의 또 다른 매력은 성별, 나이 등에 따른 제약이 거의 없다는 것. 호리호리하고 근육이 잘 붙은 체형이 누드모델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예술 분야부터 인체 모형 같은 의료 보건 분야까지 수요가 광범위해 누드모델 몸의 형태와 정체성은 다양할수록 좋다.
“살집이 있든, 나이가 많든 사람의 몸은 다 아름답고 우아합니다. 같은 포즈도 누가 취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죠. 이 매력적인 작업을 저는 늙어 죽을 때까지 할 겁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