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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십자군전쟁-IS 테러… 종교는 정말 폭력적일까

입력 | 2021-07-17 03:00:00

◇신의 전쟁/카렌 암스트롱 지음·정영목 옮김/746쪽·3만4000원·교양인




종교의 이름으로 수많은 전쟁과 폭력이 행해졌지만 많은 경우 실제 동기는 경제적 이득을 위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에밀 시뇰의 유화 ‘십자군의 예루살렘 정복’. 동아일보DB

세계가 대역병의 울타리에 갇히기 전 서구의 가장 큰 근심은 ‘이슬람 테러’였다. 유럽이나 미국의 대도시에서 칼과 총을 맞은 사람은 희생자의 일부에 불과했다. 이슬람국가(IS)가 장악한 지역에서는 대량 살육이 일상이었다.

“종교는 역사상 모든 주요한 전쟁과 폭력의 원인이었다.” 학자들과 여러 매체의 단언은 당연시됐다. 십자군전쟁, 30년 전쟁…. 역사 속 증거는 끝도 없어 보였다.

수녀에서 환속한 영문학자로, 다시 종교학자로 삶의 방향을 바꾼 저자(영국)는 이런 인식에 ‘잠깐’이라며 제동을 건다. “종교가 폭력에 가장 많은 책임이 있다면 무엇보다 많다는 것인가?” 질문은 이어진다. “예를 들어보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종교전쟁이란 말인가? 히틀러가 종교적 동기에서 유대인을 살육했나?”

이 책은 ‘폭력으로 본 종교학 개론’이라고 할 만하다. 질문은 도전적이지만 ‘종교는 폭력적이지 않다’고 증명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신화적 부분으로만 여겨져 온 종교 경전의 내용과 실제의 역사가 정치를 비롯한 다른 영역과 어떻게 연관되었는지에 대한 함의를 ‘폭력’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파헤친다. 중동에서 유래한 ‘유일신 종교’들은 물론 불교를 비롯한 인도의 종교들, 중국의 제자백가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돋보기를 들이댄다. 많은 경우 종교는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강화했지만 폭력의 실제 동기는 다른 곳에, 주로 ‘수익’에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농경이 시작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엘리트 집단은 농산물을 강탈했고 성직자들은 이런 폭력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런 폭력의 구조 덕에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킬 특권계급도 생겨났다.

문명 초기 단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정치는 섞여 있었다. ‘종교’라는 별도의 단어조차 근대 이전엔 없었다. 권력이 전쟁을 비롯한 폭력을 강제했고 성직자들은 이를 뒤늦게 축성(祝聖)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오늘날 ‘가장 폭력적인 종교’로 치부되는 중동 일신교는 그 태생에서 오히려 폭력적 요소가 적었다. 초기 이스라엘 민족은 폭력적 농업국가의 강제에서 벗어나 유목생활을 영위하려는 집단이었고 구약성서에도 이런 성격이 반영됐다.

로마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차지한 게르만족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뒤 구약성서 속에서 이민족을 몰아낸 유대 왕들을 숭배했다. 유럽에서 전쟁은 수익 사업이었다.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제1차 십자군은 사흘 동안 약 3만 명을 살육했다. 종교의 이름을 띤 참화였지만 실제 성격은 물질적 이익을 위한 정복 전쟁이었다.

근대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종교에 대한 열정은 민족국가에 대한 열정으로 대치됐지만 폭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종교가 폭력과 결부되어 왔지만 종교 고유의 폭력적 본질이란 없다’고 결론짓는다. 21세기에 종교의 이름을 내세운 폭력도 ‘갑자기 생긴 종양’처럼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현대라는 실상의 일부분이며, 공허와 씨름하는 현대인을 위해 종교가 그 공격성을 흡수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종교의 원초적 폭력성’이라는 혐의를 벗겨준 뒤 저자가 종교에 주문하는 메시지는 이렇다. 우리는 종교가 가장 훌륭했을 때 한 일을 해야 한다. 세계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구축하고 존중을 계발하며 세계의 고난에 책임져야 한다.” 원제는 ‘Fields of Blood’(피의 들판·2014년).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