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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세요… 방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입력 | 2021-07-17 03:00:00

[위클리 리포트]스스로 방에 가둔 ‘은둔 청년들의 외침’
서울시-‘사회적기업 K2’ 치료 지원
공동생활하며 찾은 작은 희망




14일 오전 서울 성북구의 청년 심리치료 사회적기업 ‘K2인터네셔널코리아’ 앞마당에서 장기간의 은둔 생활 끝에 방 밖을 나선 은둔 청년들이 당당히 팔짱을 낀 채 웃음을 짓고 있다. 최소 5년 이상 방 안에 자신을 가둔 은둔 경험을 가진 이들은 ’은둔고수’로 활동하며 또 다른 은둔 청년들의 재활과 자립을 돕고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방에서 나가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12일 오후 2시 서울 성북구의 청년 심리치료 사회적기업 ‘K2인터내셔널코리아’ 사무실. 한창 상담 중인 상담사의 휴대전화 액정화면에 표시된 통화 시간은 1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에선 이 전화가 끊기지 않길 바라는 한 청년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1일부터 서울시와 함께 ‘은둔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K2 사무실은 요즘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로 분주하다. 서울시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다음 달 31일까지 모집에 나섰다. 최소 3개월 이상 집 밖에 나오지 않고 고립을 선택한 만 19세 이상 34세 이하 청년이 모집 대상이다.


○ 프로그램 시작 2주 만에 모집 인원 2배 몰려

서울시가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예상한 모집 인원은 50명. 하지만 2주째인 14일 예상치의 두 배에 이르는 은둔 청년 96명이 “이젠 방 밖으로 나가고 싶다”며 신청서를 냈다. 양성만 서울시 청년정책팀장은 “50명만 모여도 성공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훨씬 더 많은 청년들이 지원하고 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장기적인 취업난을 겪으며 은둔 상태에 놓이게 된 청년들이 생각보다 더 많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전화 상담부터 심리치료 프로그램 운영까지 도맡은 K2 사무실은 지원자들의 뜨거운 열기에 과부하 상태였다. 국내 은둔청년을 돕기위해 2012년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 오쿠사 미노루 팀장을 포함한 전문 상담 직원 2명은 식사하거나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 하루 8시간 가까이 전화 상담을 지속했다. 그런데도 오쿠사 팀장은 통화하는 내내 눈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청년들이 방 안으로 들어가게 된 이유는 제각각 달라요. 어떤 청년은 1년, 어떤 청년은 10년 넘게 방 안에만 머물기도 해요. 자신을 가둔 이유도, 기간도 다르지만 은둔 청년들이 제게 전화를 건 이유는 같아요. 방 밖으로 나와서 살아가고 싶다는 의지 때문이거든요.”

○ 세상 밖으로 나온 은둔 청년들

6.6m²(약 2평) 남짓한 방에서 7년간 은둔한 이준혁(가명·23) 씨도 올 6월 K2의 문을 두드렸다. “살고 싶어서”였다.

5월 초였다. 여느 때처럼 낮인지 밤인지 모를 시간에 눈을 뜬 이 씨는 가슴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고 한다. 숨을 쉴 수조차 없는 고통이었다. 이 씨는 “이러다가는 정말 죽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살고 싶었고, 여기서 나가고 싶었다. 한 번도 부모에게 먼저 말을 건넨 적 없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방 밖에 있는 엄마에게 ‘살려 달라’고 전화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씨는 16세 때 자신을 방 안에 가뒀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진 학교폭력을 견딜 수 없어 부모와 교사에게 고민도 털어놔 봤다. 하지만 그때마다 “네가 노력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 씨는 “저를 비웃는 반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저는 노력하고 있는 건데… 자꾸 더 노력을 하라니까 이젠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힘이 남아있질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뜨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식사는 하루 한 끼만 먹었다.

스스로를 가둔 이 씨지만 마음 한구석엔 “나가고 싶다”는 의지가 남아 있었다. 자신과 같은 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K2의 연락처를 휴대전화에 저장해둔 것도 그 자신이었다. 5월 가슴을 부여잡고 찾은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이 씨는 곧장 K2에 전화를 걸었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살려주세요.”

이 씨는 6월 초부터 성북구에 있는 K2 공동생활 시설에 머물고 있다. 한 달간 또래 은둔 청년 3명과 한방을 쓰면서 이 씨에겐 크고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삼시세끼 밥을 지어 먹으며 낮과 밤이 생겼다. 밥을 먹으니 근력이 생겨 매일 운동도 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정신과 다녀올게’라는 말을 해도 돼요. 엄마조차 ‘왜 정신병원에 가냐. 스스로 이겨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각자 책상에 정신과 약 하나쯤은 다 올려져 있어요. 집에선 아프다는 말을 꺼내면 ‘너 때문에 내가 더 힘들다’는 반응이었는데… 여기 친구들은 ‘너도 아프구나’라고 해요. 이상하게 그 말이 위로가 돼요.”

더 해보고 싶은 일도 생겼다. 14일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씨는 “7년간 하루 10시간 넘게 컴퓨터로 일본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일본어를 읽고 말하고 쓸 줄 알게 됐다”며 “요즘엔 일본어 칼럼을 읽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문의 일본어 칼럼을 막힘없이 줄줄 읽어 내려가는 이 씨의 눈이 반짝였다.

○ “‘은둔도 스펙’이란 격려에 용기 내”

이 씨가 7년간 은둔 생활을 통해 ‘일본어 고수’가 된 자신을 발견했듯 은둔 경험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발견해 내는 게 프로그램의 목표다. “은둔도 스펙”이란 말은 K2가 내건 슬로건이기도 하다. K2는 지난해 9월부터 은둔 경험을 가진 청년들을 모집해 또래 은둔 청년을 상담하는 ‘은둔고수’를 양성하고 있다.

10년간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둔 정하나(가명·27) 씨는 “은둔도 스펙이란 말이 나를 살렸다”고 했다. 정 씨는 지난해 9월 은둔고수 프로그램에 참여해 진짜 은둔고수로 거듭났다. K2의 임시직원으로 일하며 자신처럼 장기간 은둔한 청년들을 방 바깥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저조차도 저를 ‘쓰레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은둔이 스펙이라는 생각에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10년간 은둔한 경험 덕분에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됐거든요.(웃음)”

정 씨는 10년 만의 외출이었던 2018년 12월 어느 날을 떠올리며 노랫말도 썼다. ‘밖에 나와 보니 햇살이 너무 따뜻하더라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어. 난 무엇을 놓쳤던 걸까.’

정 씨를 포함한 은둔고수들이 함께 만든 이 노래는 14일 음원 사이트에 공개됐다. 노래 제목은 ‘혹시 괜찮다면 물어봐도 될까요’. 정 씨는 “지금도 방 안에 자신을 가둔 채 웅크리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며 “혹시 괜찮다면 내가 먼저 말을 걸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정 씨에게는 꿈이 생겼다. 지금은 K2의 임시직원이지만 언젠가 정직원이 되는 것이다. 정 씨는 “인생 망했다고 생각하고 자포자기한 채 저를 방치해 뒀는데 바깥에 나오니 ‘은둔도 기회’가 됐다. 이젠 그 기회를 잡고 싶다”고 말했다.

○ 은둔 자녀 둔 부모 “기성세대가 먼저 바뀌어야”

2018년부터 은둔고수로 활동하는 유승규 씨(28)는 무엇보다 기성세대인 부모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유 씨는 K2에서 ‘부모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은둔 청년 자녀를 둔 부모와 만난다. 첫 만남 땐 상당수의 부모가 “우리 애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상담을 거듭할수록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고 한다.

“방 안에 있으면 모를 것 같지만 오히려 방 밖에 있는 부모의 한숨 소리가 더 잘 들려요. 은둔하게 된 이유는 묻지 않고 은둔 자체를 치부처럼 여긴다면 자녀의 은둔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어요. 한 사람이 은둔까지 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고, 때때로 변화해야 할 대상은 방 안에 있는 자식이 아니라 밖에 있는 부모일 때가 많아요.”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를 만든 주상희 씨(58)는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16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주 씨의 아들은 18세 때 은둔을 시작했다. 주 씨는 “아들이 왜 방 안에 자신을 가뒀는지 이유는 묻지 않고 내 방식대로 ‘책이라도 읽어라’, ‘취업해라’ 소리 지르며 강요했다”며 “10년 넘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아들이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주 씨는 아들이 초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했고 그 상처가 가슴 깊숙한 곳에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주 씨는 “이제야 아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 은둔 청년 문제 방치하면 미래에 부메랑 돼

우리보다 앞서 은둔 청년을 사회 문제로 인식한 일본은 은둔 청년 전담 지역지원센터 75개를 운영하고 있다. 정확한 실태 조사를 통해 15∼39세 은둔 청년이 54만 명가량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중앙정부 지원 아래 심리 상담과 교육, 취업과 연계된 활동들이 이뤄진다.

전문가들은 신속히 은둔 청년의 실태를 파악해 조기에 지원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사회적 비용으로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K2의 오쿠사 팀장은 “일본에선 한 청년이 25세부터 65세까지 납세자로 살 때와 평생 사회 보장 급여를 받는 수급자로 살아갈 때의 사회적 비용 격차를 계산한 결과 1인당 1억5000만 엔(약 15억6000만 원)이란 계산이 나왔다”며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서울시가 올해 처음 시작한 은둔 청년 지원 프로그램의 예산은 6500만 원. 당초 예상했던 50명을 지원하기에도 빠듯한 실정이다. 서울시가 나서기 전까지는 청년재단이 2018년부터 K2 등 은둔 청년 상담 단체를 지원했다. 첫해 5명으로 시작해 올해 50명으로 지원 대상이 10배로 늘었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실태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19년 10월 광주시에서 전국 지자체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제정해 지난해 실태 조사를 한 게 유일하다. 광주시는 은둔 청년 실태 조사를 3년마다 하고 이들을 위한 지원센터를 설립하도록 규정한 조례를 제정했다. 청년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서울시는 아직 조례 제정을 준비하는 단계다.

장기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16년째 은둔 생활을 하는 아들과 사는 엄마 주 씨는 “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일은 당장 취업 등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타나지 않아 조급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모든 정책은 이 아이들의 속도가 사회와 다르다는 걸 전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34세인 주 씨의 아들은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난생처음 밥벌이를 했다. 기특함도 잠시. 올 6월부터 일을 쉬며 숨을 고르는 아들을 보며 엄마는 또다시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며칠 전 “언제 일할 거냐”고 보채고 말았다.

“잔소리를 하면서도 아들이 또 상처받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아들이 제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엄마, 기다려. 나는 1년에 1mm씩 자라.’ 저는 아들에게 ‘엄마가 기다릴게’라고 대답했어요.”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