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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태워진 장국영 遺作, 19년만에 한국서 본다

입력 | 2021-07-20 03:00:00

투신 전 마지막 영화 ‘이도공간’, 사망원인 지목되면서 비판 일자
홍콩 제작사, 원본 필름 불태워… 재개봉 이끈 영화사 대표 정태진
왕가위와 의기투합, 남은 필름 찾아 상영 가능한 디지털 영상으로 복원
“팬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인 결과”




21일 국내에서 재개봉하는 영화 ‘이도공간’에서 정신과 의사 짐을 연기한 장국영이 귀신을 보는 환자의 진료 기록을 검토하는 장면. 장국영과 ‘아비정전’ ‘동사서독’ ‘해피투게더’ 등을 함께한 왕가위 감독과 모인그룹의 정태진 대표, 엣나인필름이 의기투합해 장국영의 마지막 영화 ‘이도공간’의 재개봉을 성사시켰다. 엣나인필름 제공

《장국영(장궈룽·張國榮·1956∼2003)은 죽었지만 죽지 않은 배우다. 요절한 스타들 중 유독 사후에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불같은 사랑과 아픔을 그린 ‘아비정전’과 ‘해피투게더’, 홍콩 누아르의 시작을 알린 ‘영웅본색’,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패왕별희’ 등 장국영의 수많은 영화는 재개봉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왔다. 그의 기일인 4월 1일에는 매년 아시아 전역에서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등졌지만 그는 우리 곁에 남아 동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다.》



그럼에도 그의 유작 ‘이도공간’(2002년)만은 볼 수 없었다. 이도공간이 장국영 사망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홍콩 제작사 ‘필름코 픽처스’가 마스터(원본) 필름을 불태워버렸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정신과 의사 짐은 귀신을 보는 얀의 상담 치료를 맡은 뒤부터 유년 시절 자살한 여자친구의 환영에 쫓긴 끝에 건물 옥상에서 투신하려 한다. 이 장면이 장국영의 마지막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는 팬들의 원망이 쏟아졌고, 역에 몰입했던 장국영이 촬영 후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영화는 그의 사망 후 자취를 감췄다.

19년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도공간이 21일 한국에서 재개봉한다. 이를 이끈 이는 영화사 모인그룹의 정태진 대표(71·사진). 정 대표는 홍콩 배우 겸 제작자인 고 등광영(덩광룽·鄧光榮)을 통해 1990년 장국영과 인연을 맺었고, 장국영은 왕가위(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을 소개했다. 왕 감독과 막역해진 정 대표는 해피투게더와 ‘화양연화’의 공동제작자로 참여했고, ‘첨밀밀’ 등을 수입하며 한국에서의 홍콩영화 전성기를 이끌었다.

16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정 대표는 “이도공간의 재개봉도 왕 감독과 전화를 하다가 나온 이야기였다”고 했다. “가위와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전화를 해요. 1월 ‘올해가 국영이의 18주기인데 뭘 할까’ 이야기하다가 가위가 이도공간 재개봉을 추진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더군요.”

마스터 필름이 사라진 영화의 재개봉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었다. 정 대표가 처음 연락한 필름코 픽처스에서는 “원본이 없어서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시작부터 막히자 정 대표는 포기하려 했지만 “TJ, 우리 한번 찾아보자”는 왕 감독의 말에 어딘가에 남아 있을 이도공간의 흔적을 추적했다. TJ는 정 대표 이름의 이니셜이자, 장국영이 그를 부르던 이름.

두 사람의 고집에 정 대표의 30년 지기인 필름코 픽처스 총괄 관리자 도미닉 입도 나섰다. 입은 당시 이도공간을 수입했던 해외 바이어들에게 수소문한 끝에 일본과 인도에 베타캠 비디오가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모인그룹과 배급사 엣나인필름은 홍콩과 인도, 일본에서 베타캠 비디오를 받아 각 비디오에서 상태가 좋은 부분들을 골라내 합쳤고, 극장 상영이 가능한 디지털 포맷으로 변환했다.

“영상, 예고편, 포스터 제작과 번역까지 다 새로 해야 했어요. 1억 원이 넘게 들었어요. 돈이 목적이었다면 안 했겠죠. 가위와 저, 엣나인필름, ‘장국영사랑’ 팬클럽이 한마음으로 뭉쳤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도공간의 재개봉은 장국영을 잊지 못하는 이들의 사랑이 모인 결과물이다. 1999년 창설된 ‘장국영사랑’ 회원들은 장국영이 국내에서 광고한 초콜릿부터 이도공간 속 그의 모습이 담긴 포토카드까지 굿즈 제작에 십시일반 돈을 보탰다. 아직도 장국영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국영은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가 없어요. 피해를 보면서까지 자기 것 다 퍼줬고, 불만이 있어도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 했어요. 그러다 힘들면 ‘TJ, 어깨 좀 빌려줘요’ 하고 기대어 있다가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드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죠. 그래서 전 그의 마지막 영화를 되살렸다는 것 하나에 만족해요. 국영이도 하늘에서 좋아하겠죠?”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