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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김기용]中 몸집만 크다고 리더 될 수 없어

입력 | 2021-07-20 03:00:00

美국무부 서열 2위에 中외교부 5위 내세워
양국 간 관계 개선 외면, 내부 결속에만 집착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외교에서 의전은 군(軍)의 경계와 종종 비교된다. 기본이면서도 일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활동인 것이다. 특히 국가 간 의전은 자존심과도 연결되는 문제여서 더욱 예민하다.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높여가며 주요 2개국(G2)으로 성장한 중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국가 간 의전에서 ‘누가 누구를 만나야 하느냐’는 문제는 중요하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대통령이 대통령을 만나고, 장관이 장관을 만나면 된다. 행정구조와 정치체제가 다른 점 등을 감안해 나라마다 의전 서열도 정해져 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강한 나라 장관이 약한 나라 대통령과 회담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의전의 기본이다.

미국 외교업무를 총괄하는 국무부에서 웬디 셔먼 부장관은 토니 블링컨 장관에 이어 서열 2위의 인물이다. 셔먼 부장관이 중국 측 인사와 회담을 진행한다면 카운터파트는 중국 외교부 서열 2위인 러위청(樂玉成) 외교부 부부장이 마땅하다. 그런데 중국은 러 부부장 대신 외교부 서열 5위로 미국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셰펑(謝鋒) 부부장을 상대로 제안했다. 의전을 무시하면서 사실상 미국과의 회담을 거부한 셈이다. 또 이런 사실들을 중국 매체에 알리면서 미국을 공개적으로 무시했다.

중국이 ‘급’이 낮은 인사를 내세우며 미국을 무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초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쉬치량(許其亮) 부주석과 대화를 하려 했다. 오스틴 장관은 군 통수권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이어 군 서열 2위의 인물이다. 쉬 부주석 역시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이어 군 서열 2위다. 서로가 대화 맞상대지만 중국은 그보다 서열이 낮은 웨이펑허(魏鳳和) 국방부장을 내세웠다. 웨이 부장은 장관급이긴 하지만 중국 공산당 최고 영도 기구인 중앙정치국 위원(25명)에도 들지 못한 인물이다.

이쯤 되면 중국은 미국과 대화를 통해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이제 중국은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확정 지을 때까지 미국과 갈등 상황을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재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 집권 이후 유지돼 오던 권력교체 시스템을 40여 년 만에 바꾸려는 중대 기로에 서 있다. 덩샤오핑,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그리고 현재 시 주석까지 이어오면서 단 한 번도 없었던 3연임을 시 주석이 노리는 것이다. 내년 가을에 있을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 대회에서 결정된다. 시 주석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종신 집권을 했던 마오쩌둥(毛澤東) 시절로 회귀하는 이런 움직임에 중국 내부에서 반발이 없을 리 없다. 이런 내부 반발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미국과 갈등이 유지되는 편이 시 주석 측에는 더 좋은 것이다. 7월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미국과 서방 세계를 향해 “중국을 괴롭히면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를 것”이라고 한 시 주석의 섬뜩한 경고도 이 같은 상황 인식의 연장선일 것이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외면하고 시 주석의 장기집권에만 집착할수록 리더 국가로 성장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몸집만 크다고 리더가 될 수는 없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포용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야 몸집에 맞는 진정한 G2 국가가 될 수 있다. 단지 몸집만 커지고 존중과 배려 그리고 소통 없이 주위를 두렵게 한다면 불량배와 다름없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