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극장에 관객들의 발길이 끊긴 요즘,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17일 오후 1시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 상영관에 앞에는 20분 뒤 시작할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긴 줄을 이뤘다. 이들은 티켓을 손에 꼭 쥔 채 동행과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중간에 나온 사람도 있다던데…” “불을 켜고 보니 좀 낫다고 하던데?” “도대체 어느 정도로 무서울까?”
극장이 마치 팬데믹 이전처럼 활기를 띈 이유는 ‘극장을 뛰쳐나올 정도의 공포’라는 입소문을 타고 개봉 4일 만인 17일 손익분기점(40만 명)을 넘긴 ‘랑종’의 ‘겁쟁이들을 위한 상영회’(겁쟁이 상영회) 덕이었다. 랑종은 ‘곡성’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이 각본을 쓰고, ‘셔터’ ‘샴’을 만든 태국의 반쫑 삐산다나꾼 감독이 연출한 공포영화. 영화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너무 무서울 것 같아 볼지 말지 고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롯데시네마는 극장 조명을 켜고 영화를 상영하는 겁쟁이 상영회를 기획했다. 발광다이오드(LED) 디스플레이가 설치된 상영관이라 내부 조명이 켜져도 화면 밝기가 균일하게 유지된다.
영화는 깜깜한 곳에서 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린 상영회에 관객들도 화답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거리두기로 인한 가용좌석 기준으로 사흘 간 4개 영화관의 평균 좌석점유율은 48%였고, 특히 서울 두 개관은 평균 65% 수준으로 높았다. 일반 랑종 입장객과 겁쟁이 상영회 랑종 입장객의 한 회차당 평균 입장객을 비교했을 때 겁쟁 상영회 쪽이 16% 더 많았다”고 했다. 애초에 롯데시네마는 겁쟁이 상영회를 사흘 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관객 호응에 힘입어 24, 25일에 추가하기로 했다.
보는 것 대신 듣는 것을 택한 CGV의 도전도 이색적이다. 화면이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소리로만 영화를 즐기는 ‘오디오북 상영전’을 기획한 것. CGV는 지난달과 이달 오디오 콘텐츠 전문 제작·유통사인 오디언과 함께 서울 CGV송파 스피어X관에서 오디오북 상영전을 열었다. 지난달 13일 배우 이보영이 참여한 ‘노인과 바다’를 시작으로 20일 조여정의 ‘오이디푸스 왕’과 27일 ‘맥베스’, 이달 5일 ‘지킬 앤 하이드’를 상영했다.
오디오북 상영전은 3S 중 스크린을 포기하는 대신 나머지 두 개 요소인 사운드와 시트의 기능을 강조한 사례다. CGV송파의 스피어X관에는 좌석 각도를 120도까지 조정할 수 있는 레이 백 좌석이 설치돼 있어서 관객은 누워서 영화를 즐길 수 있다. 개별 좌석마다 대사와 OST, 효과음 등을 더 또렷하게 들을 수 있는 사운드 시스템도 설치돼 있어 관객은 오롯이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황재현 CGV 커뮤니케이션팀장은 “극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3S 중 사운드와 시트에서 차별화된 강점을 제공하는 기획전이었다. 9월에도 오디오북 기획전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공연, 명상 등 다양한 장르의 영상화를 꾀하기도 했다. CGV는 지난달 명상 애플리케이션 ‘루시드 아일랜드’와 협업해 명상 프로그램인 ‘마인드 온앤오프’도 선보였다. 1시간 동안 하늘, 우주의 풍광이 큰 스크린에 보여지고, 잔잔한 음악, 명상을 돕는 내레이션 안내 등이 소리로 나온다.
앞서 3월에는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더 뮤지컬 라이브’를 상영했다. 지난해 11월 개막한 10주년 기념 공연을 뮤지컬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가 CGV와 협업해 극장판으로 제작한 것. 국내 뮤지컬 최초로 4DX로도 상영됐다. 모션의자, 특수 환경장비 등이 도입된 4DX 상영에서는 음악의 박자에 맞춰 의자가 움직이거나, 해적선을 타는 장면에서 물이 튀는 효과 등이 들어가 몰입감을 더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