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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의 명물 ‘근대골목’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나

입력 | 2021-07-21 03:00:00

북성로-서성로 일대 근대 건축물
아파트 공사로 상당수 사라질 위기
중구는 ‘도시재생 뉴딜사업’도 추진
재개발로 역사문화유산 훼손 우려



20일 대구 중구 종로초등학교에서 바라본 북내동 일대. 최근 이곳에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이인성 고택 등 보존 가치가 높은 근대건축물이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20일 오후 대구 중구 북내동 한 골목길. ‘조선의 고갱’으로 불렸던 천재 화가 이인성(1912∼1950)이 1922년부터 1928년까지 거주한 고향집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목재 대문에서 그의 향기가 전해오는 듯했다.

화가 이인성은 최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이 4월 이인성의 대표작 ‘노란 옷을 입은 여인’ 등 예술품 2만여 점을 사회에 환원하면서다. 현재 대구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이건희 컬렉션에서 이인성 작품은 단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이인성 조명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구시는 2016년 이인성 고택을 매입해 근대문화 전시관으로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껏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황. 더구나 최근 북내동 일대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이 집은 철거될 위기다. 한 주민은 “이인성 고택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면 주변의 역사적 골목 가치도 사라질 것”이라며 “근시안적 행정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빨간색으로 표시한 지역이 대구 중구 북내동 재개발 사업지.

대구 중구 북성로와 서성로 일대 근대골목이 존폐 위기에 놓였다. 앞서 북성로의 근대건축물 상당수가 아파트 신축 공사로 철거된 데 이어 서성로 북내동 일대 재개발까지 추진되면서 역사적 보존 가치가 높은 현장과 상징물들이 사라질 처지다.

대구시에 따르면 현재 북내동에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건립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A시행사는 이곳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 5월 25일 대구시에 건축 심의를 신청했다. 계획대로라면 연면적 13만6570m²에 지하 6층, 지상 47층(689채) 건물이 들어선다.

중구가 최근 현장을 확인한 결과 이인성 고택 등 철거 가능성이 높은 근대건축물이 최소 5채다. 학계는 발굴하지 못한 근대건축물 등 문화유산이 다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5채 가운데 4채는 중구의 리노베이션 사업을 통해 보존한 근대건축물이다.

중구는 2014년부터 보존 가치가 높은 근대건축물을 재정비하는 리노베이션 사업을 추진했다. 지금까지 30여 곳에 14억여 원을 투자했는데, 이미 4채가 북성로 공구골목 아파트 재개발로 사라졌다.

게다가 중구는 북성로 및 서성로 일대에 ‘도시재생 뉴딜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중구는 2018년 국토교통부의 공모에 선정돼 300억 원을 확보했다. 중구는 이곳 근대건축물 등 문화유산을 보존하면서 골목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구상했다. 2019년부터 올해 초까지 52억 원을 들여 근대건축물 4채를 구입했다. 이 가운데 2채는 북내동 재개발 추진구역에 포함됐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중구는 최근 국토부와 북내동 재개발 상황을 논의했다. 중구 관계자는 “관련 특별법에 지방자치단체는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의 공유 재산을 매각하거나 양도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A시행사에 중구가 매입한 건물 2채 등을 매각할 수 없어서 재개발은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행사는 재개발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관련 법리 해석을 거친 결과 사업 추진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구의 관광 상징인 근대골목이 재개발로 인해 곳곳이 망가지면서 쌓은 명성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근대골목 투어가 끊어지고 결국 소상공인의 버팀목인 골목경제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경숙 중구의원은 “중구가 재개발 사업 진행 초기부터 상황을 인지하고 확실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재개발 정책만 밀어붙여서 정작 지키고 가꿔야 할 역사문화유산을 잃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