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대중성이 아닌 충성심. 듣지 않는 CD를 사는 국경 없는 지지자, 그들의 이름은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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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멤버들이 ‘버터’ 뮤직비디오에서 ‘ARMY’ 글자를 만든 모습. BTS 버터 MV 캡처(하이브 제공)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5월 말 내놓은 신곡 ‘버터’의 3분 3초 길이 뮤직비디오. 2분 10초쯤에 7명의 멤버가 몸으로 ‘ARMY’라는 글씨를 썼다. 아미는 BTS 팬덤의 이름이다. 이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조회수 1억 회에 도달하는 데는 21시간이 걸렸다. 시간당 470만 회가 넘는다.
“팬분들 보고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당신들이 만들어준 상이니까. 그렇게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요.” (BTS ‘지민’. 유튜브 오리지널 ‘BTS 번 더 스테이지 에피소드 6’ 중에서)
신인 보이그룹 ‘T1419’ 멤버들의 사진이 래핑된 버스. 9명의 멤버들과 스태프들은 이 버스를 타고 방송국 등으로 이동한다.
K팝 아이돌을 키운 것은 바로 이런 팬덤이다. 과거에는 대중적인 인기를 지향했지만 요즘 아이돌은 충성도가 높은 팬덤을 구축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박진영 JYP 대표 프로듀서는 최근 한 프로그램 제작발표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음악 산업이 달라졌어요. 1세대 아이돌 그러면 대중들이 다 알았거든요. 아이돌 팬과 대중이 겹치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대중과 아이돌 팬들이 거의 안 겹쳐요. 아이돌 팬들은 일반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고요. 일반 대중들은 아이돌 세계에서 핫하고 시끄러워져도 몰라요. 이게 세계적으로 폭발하면 그때서야 ‘어? 저런 게 있었어, 누구야’ 하고 뒤늦게… 차트에 올라오면 ‘이 가수가 누구지?’ 서로 모르는 거예요.”
‘T1419’ 멤버가 포토북에 사인을 하고 있다.
팬덤, 듣지 않는 CD를 사다
‘피지컬’이라 불리는 앨범 판매량은 세계적으로도 빠르게 줄고 있다. 하지만 K팝 아이돌의 앨범 판매는 이러한 흐름에 역행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아이돌 그룹의 팬들도 CD로 노래를 듣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장용 혹은 아이돌 그룹을 지지·응원·후원하기 위해 앨범을 구매한다. K팝 아이돌을 기획하는 엔터테인먼트기업은 이런 팬을 위해 앨범을 사진집과 포토카드, 스티커 등으로 가득 채운 소장용 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같은 앨범을 여러 개의 버전으로 구성하거나 앨범마다 서로 다른 멤버의 포토카드를 무작위로 섞어 넣기도 한다.
아이돌 앨범에는 CD뿐만 아니라 포토북, 멤버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포토카드 등이 동봉되어 있다.
활동 기간 틈틈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1장뿐인 사진’을 만들어 앨범에 넣는 경우도 있다. 모두가 팬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다.
“팬덤 그 자체를 중요한 요소로 넣고 계획”
팬덤을 기반으로 하는 공연 매출도 앨범 매출과 맞먹을 정도로 크다. 탄탄한 해외 팬덤을 확보해야 시도할 수 있는 일본 돔구장 공연 투어나 미국·유럽 대형 스타디움 공연은 아이돌 그룹이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는 행사다.방탄소년단, 뉴이스트 등 하이브 소속 가수들의 음악을 주제로 마련된 전시 공간 ‘하이브 인사이트’. HYBE INSIGHT(하이브 인사이트) 제공.
방탄소년단이 소속된 하이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인 지난 2019년에 1080억 원의 음반·음원 매출과 1910억 원의 공연·팬미팅 매출을 기록했다. BTS는 31회의 콘서트로 138만 장의 티켓을 판매했다.
팬들을 위한 서비스에는 한국 기업 특유의 발 빠른 첨단기술 활용도 동원된다. BTS는 코로나19 확산 속에서도 올해 6월 13, 14일 이틀 동안의 온라인 팬미팅·공연 행사로 6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왼팔에 깁스를 한 ‘T1419’ 멤버 케빈이 영상통화 팬사인회에서 팬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기술을 이용한 온라인 팬미팅·공연 행사는 팬을 위해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볼 수 있다. K팝 아이돌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팬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일상을 모두 SNS로 생중계하고 새로운 곡을 공개하는 행사를 팬들과 함께 하기도 한다.
“해외의 아티스트가 뮤직비디오 하나에 집중한다면, K팝 아티스트는 팬들과 친밀도가 높아요. 곡 작업이나 댄스 연습영상 그리고 본인의 생활까지 좀 더 공유하죠. 팬들도 영상을 보면서 ‘좋아요’에 그치지 않고 댓글을 달고 공유를 하고. 한국의 파트너들은 앨범 공개 등 중요한 이벤트가 있으면 팬덤 자체를 중요한 요소로 넣어놓고 계획을 짜는데 그런 부분이 K팝 발전의 큰 요소인 것 같아요.” (이선정 유튜브 한국 중국 대만 홍콩 음악 파트너십 및 아태지역 아티스트 지원 총괄 상무)
SNS의 힘 그리고 ‘무해한’ 노랫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도 케이팝이 전 세계적 팬덤을 이룰 수 있었던 주요 배경이다. 지역적인 한계가 뚜렷하던 과거의 미디어와 달리 국경을 뛰어넘어서 같은 여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케이팝 아이돌이 각광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됐다는 것이다.
“2009, 2010년경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플랫폼이 발달하고 한국 엔터테인먼트사 최초로 SM이 유튜브에 채널을 오픈 했습니다. 이전에는 아시아 지역을 넘어서는 미주, 유럽 지역은 사실 물리적으로 어렵지 않았습니까? 인터넷, SNS의 발달로 인해서 전 세계 어디에서든 누구든 쉽게 영상을 접할 수 있고 보게 되고, 관심만 생기면 열정이 생기고, 자꾸 케이팝을 보게 되고 그로 인해서 한국의 K팝을 즐기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서… SNS의 발달이 터닝포인트가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 올 2월 tvN ‘월간커넥트’ 인터뷰 중)
케이팝은 음악적으로 특정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멜로디가 아니라 가사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 더 정확한 접근일 수 있다. 글로벌 팬덤의 요구를 감안한 ‘소독된 엔터테인먼트’가 핵심 요소라는 분석이다. BTS가 전파했던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처럼, 때로는 일종의 ‘건전가요’처럼 보일 정도이지만 잘 정제된 메시지로 세계를 공략했다.
세계 어느 곳의 학부모가 보기에도 청소년 자녀가 듣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평가 혹은 노랫말이 팬들의 정신적인 지지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 K팝은 그 두 시선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돌 그룹은 멤버 개인들도 이런 ‘무해한’ 역할을 할 것을 요구받는다.
한국의 신산업으로 떠오르는 K팝
K팝은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BTS을 보유한 ‘하이브’의 시가 총액은 20일 종가를 기준으로 11조9000억 원. 한국의 주력 산업, 조선업의 최대 기업 한국조선해양을 훌쩍 뛰어넘었다.K팝 아이돌 육성은 이제 한국에서 하나의 생태계를 갖췄다. 세계적인 음원·음반 유통사들도 한국에서 아이돌 그룹 육성에 나서고 있다. 유니버셜뮤직은 걸그룹 ‘트라이비’, 소니뮤직은 보이그룹 ‘T1419’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H.O.T.’ 출신인 토니안은 “거리마다 농구 코트나 운동 시설이 잘 갖춰진 미국에서 스포츠 스타가 나오는 것처럼 한국에는 이제 노래와 춤에 최적화된 시스템이 갖춰졌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가수가 되기 위해 한국으로 오는 10대들이 늘고 있는 이유다.
신인 걸그룹 ‘트라이비’ 일본인 멤버 미레(왼쪽에서 네번째)는 세계적인 아이돌이 되고 싶어 한국에 왔다.
“원래 블랙핑크를 좋아했어요. 그렇게 되고 싶어서 일본에서 먼저 춤을 배웠고, 더 잘하고 싶어서 한국에 와서 춤을 배우기도 했어요. 블랙핑크처럼 세계적인 아이돌 가수가 되려면 이제는 한국에서 데뷔해야 하니까, 그래서 온 거죠.” (트라이비 일본인 멤버 ‘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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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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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편집: 홍정수 기자
▽프로젝트 기획: 이샘물 이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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