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아직 젊다…코트에서 더 땀 흘리고 싶었다” KBL 최초 父子 심판 된 이민영

입력 | 2021-07-21 15:33:00


KBL에서 교육받는 이민영 수련심판의 모습. KBL 제공



“네 아버지가 심판이셨잖니. 너도 심판 한 번 해봐.”

지난해 5월 15일 스승의 날, 전직 프로농구(KBL) 선수 이민영(26)은 경복고 재학 시절 은사인 김성현 전 농구부 코치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동인 전 KBL 심판(56)이다. 아버지를 따라 농구를 시작했지만, 김 전 코치의 말을 듣기 전까지 심판이 될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432일 뒤인 이달 20일 KBL은 이민영을 신임 수련심판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KBL에서는 매 시즌 18명의 전임심판과 3명의 수련심판이 활동한다. 이민영은 서류전형과 필기 및 실기(체력) 테스트, 면접을 통해 당당히 심판 데뷔에 성공했다.

이동인 전 KBL 심판의 현역 시절 모습. 이민영 제공



● 아버지와 두 아들 모두 바스켓 인생, 농구 가족
이민영 수련심판은 KBL 심판이었던 아버지 이동인 씨(56)의 첫째 아들이다. 이동인 씨는 2004~2005시즌 KBL 정규시즌 심판상, 2009년 스포츠토토 한국농구대상 심판상을 받았다. 과거 실업팀 선수로 뛰기도 했다. 1살 터울인 남동생 이권영 씨도 대학교 1학년까지 농구 선수 생활을 했다.

이민영 수련심판은 경복고, 경희대를 나와 2017~2018시즌부터 2시즌 동안 현대모비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그가 태어난 지 2년째 되는 1997년 아버지는 처음 출범한 KBL 심판이 됐다. 어머니는 그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저녁마다 아버지 경기를 틀어놓고 녹화를 했다. 자연스럽게 농구에 관심을 갖게 됐고, 대방초등학교 4학년 말 농구선수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민영 이동인 전국체전 우승 가족사진. 이민영 제공



프로의 세계는 쉽지 않았다. 경복고 시절 동생과 함께 전국체육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지만, 현대모비스 입단 후 성적은 좋다고 보기 어려웠다. 2018년 정규시즌 D리그 8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1.4득점, 1.3리바운드, 1.0어시스트를 기록한 그는 이후 구단과 재계약 불발로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이민영 현대모비스 선수 시절 사진. KBL 제공



● 코트 포천청을 향한 새로운 인생 시작
약 반 년간의 공백기를 거쳐 지난해 1월 13일 군에 입대했다. 은퇴 당시 현대모비스에서도 ‘아버지를 따라 심판의 길을 걸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병역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훈련소를 거치고 자대에 배치를 받자 전역 이후 진로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김 전 코치의 심판 전향 권유가 처음으로 가슴에 깊이 와 닿을 수 있었던 이유다.

이민영 수련심판은 “아버지가 심판이셨는데 왜 한 번도 심판이 될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싶었다”면서 “결정적으로는 아직 나이가 젊은데 선수 은퇴를 하면서 코트를 떠난 게 마음에 걸렸다. 심판이 되면 다시 코트에서 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심판을 해보겠다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 이동인 씨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자신이 농구 심판으로 살며 어려웠던 순간들이 떠올라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울텐데 괜찮겠니?”라고 물어보면서도 정작 심판 준비생의 길로 들어선 이후에는 심판 동작이나 시그널 등을 가르쳐주는 데 최선을 다했다.

이동인 전 KBL 심판 현역 시절 사진. KBL 제공



심판 전향에 성공하면서 이동인-이민영 부자(父子)는 KBL 최초의 아버지-아들 심판이 됐다. 수련심판은 KBL 정규시즌 경기에 서는 전임심판의 자격을 얻기 위해 연습경기와 D리그 등을 뛰는 일종의 ‘교육생’이다. 통상 2~3년의 수련심판을 거쳐 전임심판이 된다. 이민영 수련심판은 “선배들이 알려주시는 심판의 기본 자세와 역량을 빠르게 쫓아가서 3년 안에 전임심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KBL에서 농구공 들고 서 있는 이민영 사진. KBL 제공




이민영 수련심판이 롤 모델로 삼는 심판은 아버지다. 그는 “아버지 경기를 보면 판단을 내리기 애매한 상황에서도 정확하고 빠르게 판정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25년차로 KBL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한 장준혁 심판도 존경하는 심판이다. 이민영 수련심판은 “한 평생 심판만을 바라보며 살아오신 그 열정을 닮고 싶다”고 설명했다.

25일 전역을 앞두고 휴가를 나와있는 이민영 수련심판은 영어 공부에도 열심이다. 아직 앞길이 창창한 이민영 수련심판을 위해 선배 심판들이 해준 조언 때문이다. 이민영 수련심판은 “선배들께서 미리 영어를 공부해서 국제심판 자격을 딸 수 있도록 준비해보라고 권하셨다. 우선 KBL 정규시즌에서 좋은 심판이 된 이후에 국제경기나 국가대항전 등에서도 심판을 볼 수 있도록 계속해서 공부해나가겠다”고 했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