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대선 여론조작 김경수 “유죄” 대법원2부 대법관 4명에 경의를… 법치 무너뜨린 친문 파시즘에도 대한민국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어젯밤 문재인 대통령은 편히 잠들지 못했을 듯하다. 21일은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2017년 대선 댓글 여론을 조작한 죄가 대법원에서 확정된 날이다.
판결에 대한 청와대 입장은 공식적으로 “없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무심할 순 없을 것이다. 전 법무부 장관 조국에게도 마음의 빚이 있다는 대통령이다. ‘친문 적자(嫡子)’ 김경수가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포털 사이트 뉴스 8만여 건에 무려 8840만 번이나 당시 문 대선 후보에게 유리하게 댓글 조작을 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게 되레 기이하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해가 적지 않지만 장점도 있다. 그중 하나가 정권 말까지 참고 견디면 적어도 5년에 한 번은 사법정의가 실현된다는 거다.
출범 초부터 ‘사법 농단’을 서슴지 않았던 문 정권이다. 물론 그들은 사법개혁이라고 주장했다. 차관급인 지방법원장 출신 김명수를 대법원장에 임명한 것도 사법부의 충성을 담보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정권 심장부가 단죄당하는 꼴을 면하기 위해서라고 봐야 옳다. ‘적폐청산’과 인사를 무기로 대한민국 판사 3000여 명을 모조리 장악하진 못해도 대법관 14명쯤은 가볍게 주무를 수 있다고 자신했을 것이다.
천만다행히도 사건은 대법원2부에 배당됐다. 이동원 주심을 비롯해 만장일치로 소부에서 유죄를 확정지은 4명의 대법관에게 경의를 표한다.
2019년 초 김경수 1심에서 유죄를 선고했다가 ‘적폐 판사’로 몰렸던 성창호 부장판사(그러나 1,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심을 선고하기 전에 자신의 인사 조치를 예감한 듯 김경수가 킹크랩 시연을 본 사실을 못 박았던 차문호 부장판사, 그리고 이런 파행 인사를 목격하면서도 2심 유죄 판결을 내린 함상훈 부장판사를 기억한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시퍼렇게 살아 있음을 보여준 이들 법관이 있어 우리는 다시 대한민국에 가슴 벅차는 희망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김경수 유죄 판결을 받아낸 허익범 특검은 검찰의 독립성이 왜 중요한지 똑똑히 보여준 우리 시대의 영웅이다. 2018년 서슬 퍼런 문 정권 초기, 약체 특검이라는 비아냥거림에 하루 3시간 이상 자본 적 없는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특검팀 전원이 포렌식 자격증까지 따면서 최선을 다해 준 데 감사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수사지휘권마저 사라진 지금, 김경수 사건보다 더 큰 사태가 벌어져도 경찰이 뭉개면 국민은 모르고 넘어가기 십상이다. 공수처장 임명에는 야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여당 혼자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한 공수처장이 과연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러고 보면 문 정권이 국정 제1과제로 내세운 검경개혁, 사법개혁, 국정원 개혁 등 권력기관 개혁은 국민을 위한 개혁이 아니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사퇴를 불러온 월성 원전 조기 폐쇄 사태에서 드러났듯, 결국 대통령 수호를 위한 친위대 개편이었던 셈이다.
헌법 66조는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은 외국에 대해서만 국가 원수일 뿐, 국민에게는 봉사자이고 삼권분립 아래선 행정부의 수반으로 봐야 옳다. 이 나라가 자기네들 것인 양, 법치(法治) 꼭대기 위에 올라앉은 문 정권이어서 김경수는 대법원 판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 친문세력이 김경수의 범행을 인정한다는 건 2017년 대선 결과를,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을 무너뜨리는 일이어서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대한민국의 정의(正義)가, 희망이 살아있음이 확인됐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