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그 옛날 ‘아이 러브 스쿨’이 유행하던 시절에는 초중고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에게 ‘인연이 많은 동문’이라는 호칭을 붙여줬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반이 되고, 심지어 ‘짝꿍’까지 하게 되면 그건 정말 큰 인연이었고, 수십 년이 흘러도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특히 초등학교 때 짝꿍은 영원한 인연의 고리처럼 우리를 따라다녔다.
지금은 소셜미디어가 발달해 인연을 맺기 쉬워졌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심지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그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친한 사이처럼 지낸다. 그 사람 생일에 축하 메시지도 보내고 그 사람이 힘든 일이 있을 때는 힘내라고 응원도 해주는 사이. 어쩌면 40년도 넘은 우정이지만 요즘은 연락도 잘 안 하는 초등학교 때 짝꿍보다 소셜미디어에서 만난 친구가 더 친근감이 느껴질 때가 많다.
우리 어릴 때는 인연을 참 소중하게 여기고, 인연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 시절에는 같은 동네 살거나 같은 학교가 아니면 친구가 되기 힘들었다. 중·고등학교에 가서는 펜팔을 하며 다른 지역에 있는 친구, 심지어 미국에 사는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지만 아무튼, 그 시절에는 어떻게든 나와 관계가 생기고 인연이 생긴 사람은 끝까지 가야 하는 운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중학생이 된 딸의 친구들을 보면 요즘 세대는 인연을 참 쉽게 생각하고 또 인간관계에서 ‘손절’이라는 말을 써가며 참 쉽게 이별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 친구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손절하고,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도 학원을 옮기면 손쉽게 손절한다. 사람 관계에서 손절이라는 말을 쓰다니, 인연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살다 보니 손절을 못 해서 더 큰 손해를 보는 경우도 왕왕 겪어봤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내가 아무리 힘들더라도 나룻배를 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게 의리고, 내 인생에서 인연을 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일부러 만들고 억지로 잡는 건 인연이 아니다. 그리고 상대방 입장도 들어보고 배려해 줄 필요가 있다. 결코 나만 편하게 살겠다는 게 아니다. 인생은, 아니 인연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된 노랫말처럼 렛잇비(let it be).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둬도 인연이면 이어지고 연결될 것이요, 인연이 아니면 자동으로 떠날 것이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