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한국산 아이돌 <4> K팝 뮤직비디오의 ‘피 땀 눈물’ 3분의 완벽을 위해 셀 수도 없이 샌 밤들 알아주지 않아도 억울할 것은 없다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고 나면 여러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 뮤직비디오 촬영은 이후 활동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승부처다. K팝은 ‘칼군무’와 수려한 패션, 외모를 고루 갖춘 ‘보는 음악’을 앞세워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뮤직비디오는 3분 남짓한 영상이지만 나흘 연속으로 이어지는 밤샘 촬영의 결과물. 한정된 예산 내에 최고의 장면을 뽑아내기 위해 격렬한 군무를 무한 반복하는 아이돌 멤버와 밤샘 작업에 초연한 ‘K스태프’의 피, 땀, 눈물로 만들어진다. 갓 데뷔한 걸그룹의 ‘부상 투혼’ 촬영 현장을 전한다. 99℃:한국산 아이돌 디지털페이지(https://original.donga.com/2021/kpop5)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 더 뽑아내야” 칼군무 무한반복… 새 신발 밑창 하루만에 뜯겨나갔다
컴백 쇼케이스를 준비하며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현빈.
“멤버들, 이동하실게요.”
올 2월 데뷔한 걸그룹 ‘트라이비’ 멤버 7명이 군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강당으로 향하자 헤·메·스(헤어·메이크업·스타일리스트) 스태프의 긴 행렬이 이어졌다. 싱글 2집 뮤직비디오 촬영이 4일째 이어지던 4월 21일이었다.
트라이비 멤버들이 안무가(오른쪽)와 방금 춘 군무 뮤직비디오 장면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아, 어떡해요!”
3일 전 뮤직비디오 촬영 때 하루 신었던 워커. 반복된 군무 촬영 하루 만에 밑창이 떨어져 의상팀은 급히 본드를 발랐다.
○ 격렬한 군무에도 외모는 흐트러짐 없어야
트라이비 멤버 중에 메인 댄서인 현빈은 과격한 회전과 발차기 동작이 특히 많았다. 현빈은 군무 촬영 도중 잠시 쉴 때마다 촬영장 구석에 다리를 뻗고 앉아 발목에 파스를 뿌렸다. 다른 멤버들도 바닥에 널브러지듯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촬영이 멈추자 헤·메·스 스태프들이 일제히 종종걸음으로 멤버들에게 달려갔다. 조금 전까지 담요를 들고 오던 이들이 이젠 선풍기를 들고 왔다. 해가 지자 서늘해진 기온에 스태프는 패딩 점퍼를 입었지만 멤버들은 반팔과 핫팬츠 차림에도 땀이 식을 새가 없었다.
군무 촬영 사이사이, 다시 촬영에 들어가기 1초 전까지 헤메스 스태프은 ‘완벽한 아이돌 비주얼’을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다시 스탠바이 신호가 떨어지자 스태프들은 썰물 빠지듯 카메라 앵글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제껏 얼마나 격한 춤을 췄든, 멤버들은 매번 촬영이 다시 시작되기 전에 갓 메이크업 숍에서 나온 완벽한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어야 한다.
○ 3분 31초에 응축된 96명의 나흘
격한 ‘칼군무’를 반복하는 멤버들은 ‘컷’ 소리가 나면 바닥에 널브러지듯 주저앉았다.
오후 11시가 조금 넘었을 때 분주하던 촬영장에 노랫소리가 뚝 끊기고 정적이 일었다. 스태프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소은이 주저앉아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멤버들이 소은을 눕히고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미끄러운 바닥에서 발을 비비는 춤을 몇 시간째 추다가 다리에 근육 경련이 난 것이다. 소은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촬영이 재개되자 현빈이 바닥에서 쉬고 있던 송선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왼쪽) 격한 군무를 추다보면 ‘피’를 보는 일도 잦다.
소은이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자 홍 감독은 평소보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군무, 이제 진짜 마지막이에요!”
이날 시간표상 촬영 시작은 오전 7시, 종료는 다음 날 오전 1시 30분이었다. 하지만 촬영은 다음 날 오전 4시가 넘어 끝났다. K팝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이 정도의 초과 근무는 흔하게 벌어진다. 트라이비 대표 프로듀서 신사동호랭이는 “이 세계에서는 학벌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대기업도 진출하려 한 적이 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근무 여건 따지면서 일할 수 없는 세계이고 대기업의 느린 의사결정으로는 대응하기 힘든 상황이 많다”고 했다.
뮤직비디오 촬영 날. 군무 촬영을 앞두고 연습을 하고 있는 멤버들.
○ 가사 발음 하나까지… 모든 것은 계산된다
가수 아이유는 4월 한 방송에서 음반을 녹음할 때 발음 하나 하나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 설명한 적이 있다.“노래 한 마디를 부르더라도 수백 가지 길이 있어요. 저만의 발음을 살리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 밤’을 발음할 때 ㅂ을 완전히 발음 안 하고 입술에 약간 공간을 넣어 ‘이 부암’으로. ㄱ 발음도 ㄱ과 ㅋ의 중간 발음으로. 보통 치찰음 계속 들으면 피곤해질 수 있어서 많이 빼는데 전 많이 살려서 포인트가 된다고 생각해요.”
연습실에서 보컬 연습 중인 켈리
연습실 안 현빈. 가사에 필기를 해가며 노래를 연습하는 모습은 독서실 속 학생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로만 녹음한 기본 사운드만 들으면 다소 힘이 떨어지지만 더블링한 ‘짜’를 덧입히면 보다 강력하고 단호한 느낌을 준다. 신사동호랭이는 “다소 과할 수 있는 ‘짜유’라는 발음을 이런 식으로 더블링을 통해 섞어 표현하면 후렴으로 이어지는 진하 파트에 힘이 실린다”고 했다.
○ 스케줄 아니면 연습실… ‘이진법’의 세계
컴백 전 자켓 촬영 중인 송선.
스케줄 아니면 연습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하루는 이 두 개의 세계를 오가는 것으로 채워진다. 마치 두 개의 숫자만으로 수를 나타내는 이진법처럼, 스케줄 있을 때가 아니면 연습실에서 좀 더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쏟는다. 격한 안무를 추면서도 음정이 불안하거나 음 이탈이 나면 그 영상은 인터넷 속에서 영원히 박제돼 ‘노래 못하는 아이돌’로 두고두고 남게 된다.
연습실에서 미용실로 이동하고 있는 트라이비 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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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기사 취재: 김배중 임보미 위은지 기자
▽사진·동영상 취재: 송은석 기자
▽그래픽·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편집: 홍정수 기자
▽프로젝트 기획: 이샘물 이지훈 기자
▽사이트 제작: 디자인 이현정, 퍼블리싱 조동진 김하나, 개발 최경선 박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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