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되려면 ‘아이돌 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동아일보 기획 ‘99℃ 한국산 아이돌’에 따르면 아이돌 지망생들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학원에서 기획사 연습생 시험을 위한 영재 교육을 받는다. 연습생이 되면 합숙 생활을 하며 하루 14시간씩 춤과 노래 연습을 하고 월말 평가를 치른다. 탈락자는 짐 싸서 집에 가야 하는 살 떨리는 시험이다. 기획사에선 연습생들의 3∼7년 후 외모와 목소리까지 시뮬레이션해 가며 데뷔 멤버를 고른다.
▷교육 시스템은 한국적이지만 데뷔 후 작업 방식은 글로벌하다. 북유럽 작곡가가 쓰고 미국 아티스트가 안무를 짜며 해외로 진출할 땐 현지 작사가가 재가공하는 식이다. BTS의 ‘버터’는 미국 캐나다 스페인 등 다국적 아티스트 14명이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 SM은 1990년대부터 세계 각국에서 매달 400여 개의 데모곡을 받아 10곡을 추려 집중 검토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새롭고도 익숙한 멜로디, 어느 문화권에서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안전한 가사가 만들어진다.
▷대학을 졸업한 일반인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아이돌은 은퇴를 생각한다. 블랙핑크의 태국인 멤버 리사(24)는 넷플릭스 다큐에서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준다고 해도 괜찮다. 우리가 얼마나 빛났는지 기억해 준다면”이라고 했다. 14세에 한국에 와 19세에 데뷔하고 5년 활동한 후 벌써 잊혀질 준비를 하는 눈빛이 짠했다. 지금도 “팝은 방탄소년단 보유국에서 제대로 배워야 한다”며 전 세계에서 아이돌 고시를 보러 온다. 세계적인 문화상품 케이팝은 10대들의 땀과 숱한 실패의 토대 위에 있음을 새삼 절감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