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운명/카일 하퍼 지음·부희령 옮김/544쪽·2만5000원·더봄
지금까지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을 다룬 책들은 숱하게 나왔다. 과도한 영토 팽창에 따른 재정 붕괴부터 정신문명의 쇠락까지 다양한 분석이 제기됐다. 대부분 인간의 과도한 탐욕과 이에 따른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의 붕괴라는 관점으로 수렴된다. 그러나 이 책은 로마를 망하게 한 건 기후변화와 바이러스, 화산 같은 대자연의 힘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마치 ‘운명’과도 같은 비극이 로마를 덮쳤다는 것이다. 2년째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신음하고 있는 요즘 상황에서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대목이다.
로마 쇠망이라는 거대 주제를 다루기 위해 고대사를 전공한 저자는 기후학과 고고학, 인류학, 생물학 자료를 바탕으로 로마사 2000년을 종횡무진 분석하고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나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시도한 ‘빅 히스토리’ 역사 서술과 닮은꼴이다.
재밌는 건 저자가 첨단과학을 분석 도구로 삼았지만 그 결론에 있어서는 과학과 거리가 있던 로마인들의 세계관과 닮아 있다는 점이다.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이드’에서 격렬한 폭풍에 내던져진 영웅의 모습을 묘사했듯 로마인들은 우연과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포르투나 여신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서기 400년 무렵 인구 70만 명의 도시였던 로마가 불과 수십 년 만에 2만 명으로 급감한 사실을 인간 시스템의 변화로만 설명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