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거리 2500㎞ SM-3 미사일 탑재… 7월 12일 서해상 AIS 작동 포착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아시가라’함(왼쪽). 7월 12일 서해에 나타난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아시가라’함(JS ASHIGARA)의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 기록. [위키피디아, 사진 제공·신인균]
7월 12일 오전 9시 37분 서해 중간수역에서 한 선박이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을 켜 자기 위치를 드러냈다. 해당 선박은 일반 상선이라기엔 빠른 21.6노트(약 40㎞/h) 속도로 남쪽을 향해 항해하고 있었다. AIS에 나타난 배의 해상이동업무식별부호(Maritime Mobile Service Identity·MMSI)는 ‘JS ASHIGARA’. 일본 해상자위대 제2호위대군(第2護衛隊群) 소속 구축함 ‘아시가라’함이다. 제2호위대군은 일본 규슈 사세보에 주둔하는 함대다. 혼슈 야마구치현과 규슈 남단의 가고시마현 앞바다를 관할한다. 제주 남동 방향의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도 주된 작전구역이다. 이러한 제2호위대군 소속 아시가라가 기존 활동 영역이 아닌 한반도 서해 한복판에 나타난 것. 심지어 작전 도중 AIS를 작동해 자기 위치를 주변국에 드러냈다.
세종대왕급 압도 아시가라함
일본 해상자위대 전투함의 서해 출현은 간과해서는 안 될 사안이다. 아시가라는 탄도미사일 방어(Ballistic Missile Defense·BMD) 임무를 수행하는 일본의 주요 전략자산이다. 이런 군함이 서해 중간수역에 나타난 것은 동아시아 안보 지형의 큰 변화를 시사한다. 우리 해군 주력함을 앞서는 강력한 전투력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반면 세종대왕급은 도입 당시 부실한 무장(武裝)으로 논란을 빚었고 그 후 이렇다 할 개량도 없었다. 여전히 구형 이지스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가령 세종대왕급이 북한 미사일을 탐지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가정해보자. 모든 레이더 능력을 미사일 탐지에만 집중하므로 적 항공기의 접근 등 다른 위협을 제대로 탐지할 수 없다.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을 포착해도 이를 타격할 별다른 자체 수단이 없다.
현지 OSINT(Open Source Intelligence: 공개출처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아시가라가 사세보 해군기지를 출항한 것은 7월 6일 오후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한국 해군 차기 이지스함의 탄도미사일 요격미사일 도입에 문제가 생겼다는 보도(동아일보 ‘3년 뒤 도입 이지스함, 北 미사일 요격무기 못 단다’ 제하 기사 참조)가 나온 날이다. 7월 6일 출항한 아시가라는 늦어도 11일 오후 서해 깊숙이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北·中 견제 못 하면 일본 ‘어부지리’
아시가라가 서해에 나타난 시점은 여러모로 묘하다. 최근 한국 해군 차기 이지스함에 탑재할 탄도미사일 종류를 두고 논란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미국 MD(Missile Defense: 미사일 방어)체제와 연동되는 SM-3 미사일이 필수라고 입을 모으지만, 우리 군 당국은 저사양 대체품 SM-6나 국산 지대공미사일 L-SAM의 해상 무기화를 검토하고 있다. 사실상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망 참가를 거부하는 모양새다(주간동아 1298호 ‘美·日 MD 엮이기 싫어 깡통 요격함 만드나’ 제하 기사 참조).
한반도 주변에서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는 한미 군사동맹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름 그대로 쌍방의무가 뼈대다. 한국이 미국의 세계 전략에 참여하지 않고 미국이 잠재적 적으로 규정한 국가들과 밀착하면 동맹은 약화된다. 미국은 약화된 힘을 보완하고자 다른 동맹국을 키울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이 한국과 대화에서 ‘공통의 가치(common values)’라는 용어를 점점 더 많이 쓰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한국이 중국, 북한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면 일본만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취할 수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99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