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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등에서 우리 국민 보호 작전을 수행하던 청해부대가 감염병에 뚫려 조기 철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병사들이 40도 고열에 후각 상실을 보고하자, 감기약 두 알씩 주면서 “버티라”고 했단다. 어처구니없는 건, 유증상자가 100여 명씩이나 속출할 때까지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보고도 못 받았다고 한다. 이 와중에 군과 방역당국은 방역 참사를 두고 책임 회피 공방에 열 올린다. 정말 어이없다.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힐 때 사람들은 ‘어이없다’ 혹은 ‘어처구니없다’고 한다. 이때 ‘어이’와 ‘어처구니’는 무슨 뜻일까. 사전은 어처구니를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바윗돌을 부수는 농기계의 쇠로 된 머리 부분’, ‘맷돌을 돌리는 나무막대로 된 손잡이’, ‘궁궐이나 성문 등의 기와지붕에 얹는 사람이나 동물 모양의 토우(土偶)’라는 이도 있다.
‘어이’는 어처구니와 같은 뜻으로, 어처구니처럼 ‘-없다’와 함께 쓴다. “너, 가끔 얼척없게 말하더라”는 드라마 속 대사처럼 ‘얼척’과 ‘얼척없다’를 입에 올리는 이도 있다. 허나 얼척은 어처구니의 경상, 전남 지역 사투리이다. 얼척에 부정어 ‘없다’가 결합한 얼척없다도 어처구니없다의 전남 지역 사투리에 머물러 있다.
어처구니의 의미는 어느 정도 드러났어도 어원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조항범 충북대 교수는 어처구니가 지역에 따라 ‘얼척’이나 ‘얼처구니’(경남)로 쓰이는 것을 보면 본래 어형은 ‘얼척’에 가까웠을 것이라고 본다. ‘얼척’에 접미사 ‘-우니’가 붙어 ‘얼처구니’가 되고 ‘ㅊ’ 앞에서 ‘ㄹ’이 탈락해 어처구니가 됐으리라는 추정이다. 볼따구니(볼때기), 철따구니(철딱서니) 등에서도 접미사 ‘-우니’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네’라는 유행어를 기억하는지. 이 말, 2015년 영화 관객이 1위로 꼽은 대사다.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 2세 조태오를 연기한 유아인이 유행시킨 말이다. 그가 맷돌에 달린 나무 손잡이를 어이라고 한 것을 두고 어처구니가 옳다고 지적한 글도 있었는데, 이는 어처구니의 뜻을 둘러싼 여러 설(說)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이없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서일까. 어이없다는 뜻의 사투리 역시 미약하나마 저마다 언어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인터넷 웹사전인 우리말샘에 올라 있는 어엽다(강원), 어척없다(경북), 어식없다(전남), 엔간찬하다(전남) 등이 그렇다.
전혀 근거가 없어 허황하다는 뜻의 ‘터무니없다’도 재미있는 낱말이다. ‘터무니’는 본래 ‘터를 잡은 자취’란 뜻인데 ‘정당한 근거나 이유’라는 의미로 확장됐다. 터무니도 ‘터무니없는 거짓말’ ‘터무니없는 욕심을 버리다’처럼 거의 ‘-없다’와 결합해서 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