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죽여 원숭이 겁주기’식 무역 제재 국제사회 적으로 돌리는 이유 중 하나
이종석 국제부장
지난주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댄 테한 호주 통상장관이 만났다. 양국 간 통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는데 이 자리에서 타이 대표는 중국이 날리는 ‘무역 펀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호주를 돕겠다고 했다. 호주를 돕기 위해 동맹국들과 힘을 합치겠다고도 했다.
중국은 최근 1, 2년 사이 호주산 소고기, 랍스터, 포도, 와인, 보리, 석탄, 목재 등에 대해 수입을 금지하거나 높은 관세를 매겼다. 고율 관세가 부과된 호주산 와인은 올 1분기 수출액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90% 넘게 줄었다고 한다.
호주가 원래부터 중국에 이런 대접을 받던 나라는 아니다. 양국은 1970년대부터 괜찮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호주 의회를 방문했을 때 의원들은 기립박수로 맞았다. 당시 시 주석은 호주 의회에서 연설을 했는데 “중국인들은 평화적인 발전의 길을 가고 있다. 세계 모든 나라가 같은 길을 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말도 했다.
화웨이 장비 사용을 막거나, 코로나19의 중국 우한 기원설을 조사해야 한다는 나라는 호주 말고도 많다. 중국의 인권 문제를 비판하는 나라는 더 많다. 그렇다고 중국이 이들 모든 나라에 호주처럼 대응하지는 않는다.
작년 한 해 호주는 전체 수출액 중 42%를 중국 시장에서 기록했다. 두 번째로 많은 일본 시장(13%)의 3배가 넘는다. 선진국 중에서 대중국 수출 비중이 이렇게 높은 나라는 드물다.
중국이 살계경후(殺鷄儆후)의 시범 케이스로 호주를 골랐다고 볼 수밖에 없다. ‘원숭이를 겁주려고 닭을 죽인다’는 말인데 무역 제재를 가하면 타격이 가장 클 것 같은 나라를 택해 다른 나라들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 편에 서면 누구든지 호주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외신도 “중국이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금지하는 등 그동안 여러 나라에 무역 제재를 가하긴 했지만 호주는 전례가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중국이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막았던 건 2010년 노벨위원회가 중국의 반체제 민주화운동가 류샤오보(1955∼2017)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노벨위원회 위원을 노르웨이 국회가 선정한다. 중국은 이런 이유로도 무역 제재를 가한다.
이종석 국제부장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