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
유현준 교수는 “건축이 바뀌면 사람이 바뀐다고 믿는다”며 “광화문광장 주변 건물 1층을 리모델링해 가게들이 들어가면 관광객 등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지금처럼 대규모 집회·시위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진구 기자
《방송에서는 어떻게 참았나 싶었다. 만약 이 인터뷰를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면 2, 3분마다 ‘삐∼’ 처리를 해야 했으니까. 그만큼 그는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에 분노했고, 특히 월세로 사는 청년임대주택과 무책임한 정치인들을 말할 때는 이마에서 핏대가 솟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를 예견해 유명해졌던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는 “부동산 문제를 조언해 달라고 하는 정치인들을 만나보면 당장의 선거를 위한 것일 뿐 장기적인 정책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월세에 특히 분노하는 이유가 뭔가.
“오래 살아 봐서 결과가 어떤지 아니까. 미국에서 유학을 포함해 7년 정도 살았는데 미국은 집값의 10% 정도만 있으면 대출받아 집을 살 수 있다. 당시 좋은 집이 우리 돈으로 5억 원 정도라 5000만 원만 있었으면 살 수 있었는데 없어서 매달 100만 원 좀 넘는 돈을 월세로 냈다. 7년이니 1억 원 가까이 되는데 만약 그때 샀으면 1억 원이 내 자산으로 남았을 거다. 월세로 산다는 건 그런 거다. 내 부동산 자산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반대로 내 노동의 대가가 사라지고, 내가 낸 돈은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의 자산으로 축적된다. 그래서 내가 월세는 21세기형 소작농을 만드는 제도라고 하는 거다. 월급의 일정액을 월세로 내는 게 소작농이 매년 일정분을 소출로 내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귀국 후에도 월세 살았나.) “집에서 도와줄 형편은 되지 않았으니까. 2005년 귀국했는데 너무 비싸 살 수가 없었다.”
“내가 살고 싶은 아파트가 7억 원 정도 했다. 근데 그때 사람들이 다 집값이 떨어질 테니 사지 말라고 했다.” (근거가 뭔가?) “인구가 줄기 때문에 집값도 내려간다는 거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때는 조금 내려가는 추세를 보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4억 원까지는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고, 내 연봉이 그때 5000만 원 정도였으니까 어떻게든 2억 원 정도를 모으면 대출받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내려가지는 않았고 결국 못 샀다.” (그 집은 지금은 얼마나 하나.) “5배 뛰었다.”
※그는 다른 곳에 집을 샀는데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유명해져 수입이 늘어난 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 같은 특별한 행운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청년임대주택이 젊은층의 주거 부담을 줄여 주는 효과는 있지 않나.
“임대주택에서 월세로 살던 청년이 중장년이 되면 돈을 모은다 해도 그 사이에 집값이 너무 올라 집 사는 걸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또 다른 형태의 임대주택을 정치인들에게 요구하게 되고 경제적 자립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정부가 임대주택을 공급하면서 청년주택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청년들에게 임대주택을 주는 건 2030세대를 영원히 가난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그리고 이미 부작용도 생기고 있고…. 작더라도 청년들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그런데, 부동산 얘기는 이제 안 하면 안 되나?” (이제 시작인데 안 한다고 하면 난 어떻게 하나.) “하도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잘 알지 않나. 내용은 안 보고 무조건 저놈이 우리 편인지 아닌지로만 판단해 공격하는 사람들. 뭐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기가 점점 더 싫어지다 보니 이제는 말하기가 싫어진다. 할 만큼 말하기도 했고.”
“공급이 부족해 생긴 과도한 압력(가격 상승)을 빼줘야 한다. 지금 집값이 엄청나게 뛴 이유가 공급이 부족하니 좋은 집 가격이 오르고, 순차적으로 그 압력이 아래로 전가돼 별로 안 좋은 집, 작은 집까지 10억 원이 넘게 된 거다. 그 압력을 빼줘야 집값도 내릴 수 있고 청년층이 나중에라도 자기 집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나는 정부가 1, 2인 가구를 위한 15, 20평 정도의 중소형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가구 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지금 나이 드신 분들 중에는 40평대 집에 혼자 또는 부부만 사는 분이 많다. 이 분들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1, 2인 가구용 주택을 제대로 잘 만들어 공급하면 이분들이 나온 40평대 집에는 그 아래에서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순차적으로 숨통이 트여 고인 압력이 빠지면 지금처럼 비정상적으로 집값이 오르지 않을 테고, 결과적으로 청년층도 그 혜택을 보게 될 거다.”
―그러려면 시간이 꽤 걸리지 않나.
“그래서 정치인들이 나쁜 사람들이라는 거다. 장기적으로 정책을 펴지 않고 늘 당장 다음번 선거만 생각하지 않나.”
―만나자는 정치인들이 많던데….
―요즘은 집을 안 사고 자유롭게 사는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도 꽤 있다.
“그건 개인의 자유니까. 단지 청년들에게 젊을 때 집을 사지 않는 게 40, 50대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려줘야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집이 없다는 건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이고,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자본을 포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지고 정부와 정치가에게 더 의존하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 많은 국민이 부동산을 갖지 못하면 결국 그 부동산 자산은 정부나 대자본가들이 갖게 된다. 점점 더 많은 국민이 국가 소유의 임대주택에 살게 된다는 것은 점점 더 많은 권력을 정치인들에게 넘겨준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한편에서는 공유경제도 늘고 있지 않나.
“나도 처음에는 공유경제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 이거 되게 괜찮네?’ 하고 생각했다. 모든 걸 가질 수는 없으니까 빌려 쓰는 것도 좋다고 봤다. 그런데 순진했을 때 생각이었다. 자본가들은 ‘앞으로는 소유할 필요 없어. 이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야’라고 공유경제가 마치 굉장히 ‘쿨’한 시스템인 것처럼 말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빌딩을 소유하지 않나. 가격이 오르는 혜택은 다 자기들이 가져가는 거지. 셰어하우스도 공동체를 향유하는 멋진 공간으로 포장하지만 결국 월세다. 평범한 직장인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부동산이 워낙 문제다 보니 대선을 앞두고 반값 아파트류의 공약도 나온다.
“반값 등록금부터 시작해서 어디서부터 반값 타령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사기 좀 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불가능할 거라고 보는데 그게 결국 시장을 교란하는 것 아닌가? 만약 땅은 공공이 갖고, 건물만 분양하는 아파트가 있다면 그런 곳은 나중에 슬럼화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택지조성원가 연동제로 12억 원 아파트를 5억 원에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은 강북 대개발로 토지는 국가가 갖고, 건물만 분양해 반값 아파트를 넘는 4분의 1(쿼터)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고 했다.
―LH 사태 등 그들만의 리그가 생긴 게 건축법 규제가 너무 많고 복잡한 탓도 있다고 했는데….
“내가 건축 분야에서 일한 지가 거의 30년이 됐는데 나도 잘 모르고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규정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 심지어 허가권자조차 검토할 때 자기도 몰라서 넘어갔다가 다른 사람이 지적하니까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규정에 대한 해석을 놓고도 서로 다르고…. LH 출신들은 그걸 다 꿰고 있고, 규정 해석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건축 관련 회사들에 LH 출신들이 없으면 일이 안 되는 거지.” (LH 같은 곳이 규모만 작을 뿐 대구 대전 울산 평택 등 지자체마다 다 있던데….) “지자체마다 거의 다 있다. 대부분 LH와 비슷할 거다. 건축 토목 쪽을 보면… 하… 나라에 도둑이 너무 많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