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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김제덕, 한국양궁 MZ세대… 쉼없이 “파이팅”, 선배에 조언도

입력 | 2021-07-26 03:00:00

양궁 혼성전서 한국 첫 金
‘될 대로 되라’식 과감하게 덤비고
기쁜 감정 즉시 표현하는 스타일
과거 조용한 양궁선수들과 달라



김제덕이 24일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혼성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뒤 포효하고 있다. 김제덕은 역대 한국 남자 선수 가운데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도쿄=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재능과 멘털을 겸비한 17세 ‘양궁 천재’의 등장에 세계가 놀랐다.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국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3위로 턱걸이해 인생 첫 올림픽에 나선 김제덕(17·경북일고)이 24일 도쿄 올림픽 양궁 혼성전에서 그동안 볼 수 없던 양궁 DNA로 금메달을 따내는 대형 사고를 쳤다.

심한 압박감을 받는 상황에서도 우렁찬 기합으로 당당하게 사대에서 서서 10점을 쏘는 대담함과 나이답지 않은 넉살, 조용한 양궁장에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퍼포먼스, 경기의 상황과 포인트를 에피소드와 섞어 듣는 사람을 집중시키는 인터뷰 스킬에 보는 팬들이나 한국 양궁 관계자들도 발칵 뒤집어졌다.

김제덕은 예전의 한국 양궁 스타들과 확연히 다르다. 한국 사회의 MZ세대(밀레니얼+Z세대)처럼 한국 양궁계에 나타난 새로운 세대다. 이전 선배들은 감정을 많이 표현하지 않았다. 묵묵히 자기 활을 쏘는 데 집중했다.

반면 김제덕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과감하게 덤비고 기쁜 감정을 즉시 표현한다. 혼성전에서 자신이 먼저 쏘고 바로 누나인 안산(20·광주여대)에게 열렬하게 조언하고 연방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긴장을 풀어줄 의도였는데 양궁장에서 흔치 않은 모습이었다. 많은 취재진 앞에서도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가 좋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가 좋냐’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메시”로 답하며 구체적인 이유까지 설명한다. 금메달을 따낸 후 기자회견에서는 “좋은 징조의 뱀 꿈을 꿨다”고 먼저 화제를 던지는 여유를 보인다.

이런 겁 없는 캐릭터는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제덕을 아는 지도자들은 그가 양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한 방향을 설정해 놓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양궁을 즐기면서 감정을 컨트롤할 줄 안다고 얘기한다. 기술적인 부분 등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단순하게 과녁의 중심에 화살을 모은다는 통 큰 마음으로 양궁을 대한 것이 빠른 실력 향상을 이끌었다는 얘기다.

양궁 영재로 TV출연 SBS TV ‘영재 발굴단’에서 2016년 기획한 ‘한중 영재 대격돌’에 한국 양궁 대표로 출연했던 김제덕. SBS 방송 화면 캡처

김제덕이 양궁을 시작한 건 예천초 3학년 때다. ‘그저 화살이 과녁 정중앙에 꽂힐 때의 쾌감이 좋아서’가 양궁을 시작한 이유다. 김제덕은 당시의 마음가짐을 지금도 항상 떠올린다고 한다. 그래서 “양궁은 즐기면서 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고, “활로 쌓인 스트레스는 다시 활로 풀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세워 자연스럽게 양궁에 미치게 됐다.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라 주변 사람도 편하게 다가간다. 김제덕은 친구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레골라스 제덕’으로 불린다고 한다. 레골라스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인물이다. 최고의 궁수이면서 긍정적인 유머와 통쾌한 입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캐릭터다. ‘대충 쏴도 텐텐’이라는 캐릭터까지 붙어 다녔다. 경북일고 양궁부 후배인 황정인은 “연습 때도 10점만 쏴서 언제든지 10점을 쏠 것 같은 믿음을 준다. 그냥 ‘10점 느낌 알잖아요’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는 형”이라고 말했다. 천재적 기질을 인정받은 것이 엿보인다.

김제덕은 “과거에는 100%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양궁을 알아가면서 운에 맡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스스로의 노력으로 채울 공간을 만들어내겠다는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도 보여줬다.

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