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경북 안동시 한 농가 처마밑 제비둥지, 제비 어미가 둥지를 비우자 구렁이 한 마리가 새끼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박영대 기자
어제 아침 경상북도 안동의 고향집에서 제가 직접 본 광경입니다. 구렁이 한 마리가 벽을 타고 처마 밑으로 슬금슬금 올라갑니다. 목표는 갓 태어난 제비 새끼들. 눈 깜짝할 사이 구렁이와 제비둥지는 손가락 한 뼘 정도 거리로 좁혀집니다. 화들짝 놀란 어미 제비는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며 구렁이에게 날아가 저항을 해 봅니다. 하지만 속수무책입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농가 주인이 긴 막대를 이용해 구렁이를 걷어내면서 상황은 종료됩니다. 오늘 아침 다시 둥지를 찾아가보니 새끼 제비들은 안전하게 어미의 먹이를 받아먹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찾는 대표적인 여름철새인 제비가 전남 담양군 한 농가 처마밑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고 있습니다. 2006년 7월 7일 촬영. 박영철 기자
삼월삼짇날(음력 3월 3일)은 강남 갔던 제비가 옛 집을 찾아오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비는 꼭 사람이 사는 집으로 찾아듭니다. 왜 제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는 둥지를 짓지 않을까요?
경북 울릉군 한 가정집 처마 밑이 부산합니다. 갓 태어난 제비 새끼가 저마다 입을 한껏 벌리고선 제 차례를 주장하고, 어미제비는 먹이를 물어 나르느라 바쁩니다. 옛말에 “논에 물 들어오는 일과 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게 가장 기쁘다”고 하죠. 제비가 제 새끼 줄 먹이 말고도, 흥부에게처럼 복덩이 박씨는 안 물어다 줄까요? 2009년 5월 31일 촬영, 박영대 기자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이 사는 집은 새끼를 낳고 기르는데 최적의 장소입니다. 어미 제비는 천적이 나타나면 날아서 도망갈 수 있지만 둥지에 있는 새끼는 저항할 수도 다른 대책도 없습니다.
강원 양양군 양양시장 상가건물 입구 전구등에 둥지를 튼 제비 새끼 4마리가 어미에게 먹이를 받아 먹고 있습니다. 2006년 7월 18일 촬영, 전영한 기자
사람이 사는 집에는 제비의 천적인 동물의 접근이 비교적 어렵고 쥐나 구렁이 등을 보면 쫓아주거나 막아줍니다. 천적과 마주치기 어려운 환경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또 처마 밑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경북 포항시 북구 서포항새마을금고 앞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위에 둥지를 튼 제비가 배고파 입을 벌린 새끼들에게 먹잇감을 물어 나르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DB
보통 동물에게 사람은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제비는 그것을 거꾸로 이용하며 삽니다. 사람의 간접 보호를 받습니다.
삭막한 도심에서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제비 새끼들이 먹이를 서로 받아먹으려고 깍깍대는 모습에서 끈질긴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서울 용산구 삼각지 골목길의 한 빌딩 입구에 둥지를 튼 제비 가족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2006년 6월 2일 촬영. 전영한 기자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마을 입구 상점의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제비가족. 부지런히 날라다 주는 먹이를 받아 먹기위해 아웅다웅하는 새끼들이 앙증맞습니다. 동아일보 DB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