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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김경수는 왜 “문 대통령을 지켜달라”고 했을까

입력 | 2021-07-26 13:58:00


2017년 대선 여론을 조작한 죄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26일 오후 수감 됐다. 그가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와 통화에서 “대통령을 부탁드린다. 잘 지켜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이재명 경기도지사 측이 발끈했다는 건 시사하는 바 간단치 않다.

인터넷 댓글 여론을 조작한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26일 수감 직전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창원=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먼저 단순한 해석. 대선주자 지지율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이낙연 측 최인호 의원은 마치 어명을 받들었다는 듯 24일 SNS로 이 사실을 공개했다. 문심(文心)이 친문 적자(嫡子) 김경수를 통해 이낙연으로 이어졌음을 대깨문들에게 공식화한 거다.

이낙연은 23일 경남도청을 찾아간 자리에서 위로차 김경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 버티는 건 잘 버티지 않나” 하면서 “대통령님을 잘 부탁한다”고 먼저 입을 뗀 쪽은 김경수였다. 그러자 이낙연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대통령을 잘 모시겠다. 잘 지켜드리겠다”고 화답했다는 것이다.

● 문심은 친문 적자를 통해 이낙연으로?
최인호는 ”이렇게 김경수, 이낙연, 문재인 그리고 당원들은 하나가 됐다“고 신이 난 듯 공개했다. 당연히 여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 이재명 경기도지사 측은 가만있지 않았다.

이들 못지않게 단순한 이재명의 수행실장 김남국 의원은 다음날 SNS를 통해 ”김 지사님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문재인 대통령님을 잘 지켜달라’고 하신 말씀을 (이 전 대표 측이) 어떤 생각으로 공개하게 됐는지 궁금하다“고 세계만방에 광고한 것이다(자칫하면 친문 적통자리를 뺏길까 걱정했을지 모른다. 이 얼마나 봉건적 사고방식이냐).

‘지켜준다’는 말이 연애용어처럼 아름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징역 2년의 형을 살러가는 사람이 남은 누군가를 다른 사람에게 ‘지켜달라’고 한다는 건 단순한 의미라 할 수 없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이 유행했기에 더욱 그렇다. 이 대목을 통해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 문 대통령의 안위가 크게 걱정된다
첫째, 김경수는 누구에게나 문 대통령을 잘 지켜달라고 말할 만큼 문 대통령 퇴임 뒤 후속 수사 등으로 이어질 안위 문제를 크게 걱정하고 있다. 즉 김경수는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했고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의미다.


2019년 창원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김경수 전 경남도시자. 동아일보DB

둘째, 이재명 지지층 가운데는 솔직히 이재명이 집권할 경우 문 정권의 잘못을 모조리 단죄할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이재명에게도 ”대통령을 지켜달라“고 할 만큼 김경수는 절실하게, 모두를 붙잡고 부탁을 했다는 얘기다.

셋째, 이처럼 중요한 부탁을 하면서 비밀 유지를 당부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다면 이낙연 측이 당장 문파를 잡기 위해 약속을 깼을 공산이 크다. 하하 그 경우, 이낙연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대통령을 지킨다는 약속은 과연 지킬 수 있을까?

● 후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 처벌 막는다고?
이보다 더 궁금한 게 있다. 설령 퇴임한 대통령 문재인을 지켜준다고 현 집권세력 모두가 맹세했다고 치자. 그러나 후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의 ‘법적 처벌’을 가로막는 것은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일 아닌가?

그러고 보니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달 초 한 인터뷰에서 검찰을 떠난 이유를 설명하며 김경수가 검찰‘개혁’에 개입했음을 시사한 적이 있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중수청(중대범죄수사청) 설치와 관련해 문 대통령의 속도 조절 주문 해석이 있었을 때 박(범계) 장관이 2월 25일에 ‘저는 기본적으로 여당 국회의원’이라며 당론에 따르겠다는 뜻을 피력했어요. 김경수 경남지사까지 나서 ‘대통령 한 말씀에 일사불란하게 당까지 정리되는 게 과거 권위적인 정치’라고 주장했고요. 김 지사는 문 대통령의 복심이잖습니까? 그래서 아, (중수청, 검수완박) 가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구나 생각했죠.“

● 끝까지 ‘검수완박’ 거들었던 김경수
쉽게 풀이하면 이런 얘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을 위한 중수청 설치가 시기상조라며 여당에 속도조절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당은 물론 법무부 장관도 2월 25일 중수청 설치를 서두르고 나섰다.


그런데 윤석열은 달리 파악했다. 김경수가 2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한마디 했다고 당이 일사불란하게 정리되는 것은 과거 권위적인 정치행태다, 오히려 정부여당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즉 김경수가 대통령 복심이니, 대통령 역시 중수청, 검수완박이 급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고 보고 윤석열 자신이 검찰을 떨치고 나왔다는 설명이다.


(물론 김경수 측은 즉각 반발했다. ”그동안 중수청 설립과 관련해 어떤 공식적 입장을 내거나 공개 발언한 사실이 없고 자치단체장으로서 이를 추진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고 했다. 당연히 그랬어야 했다.)


윤석열 전 검찰종장이 재직 당시인 올해 3월 여당의 검찰 수사권 박탈과 중대범죄수사청 입법 기류를 두고 ”부패완판“이라고 비판하는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문 정권 핵심은 검경수사권을 조정해 검찰에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만 남기고도 끝내 못미더웠던 것이다. 김경수는 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선거범죄 등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까지 완전 박탈하고(검수완박) 중수청을 설치할 것을 끝까지 거들었음을 윤석열이 폭로한 것이다.

● 2017년 대선 여론조작 ‘몸통’ 재수사하라
윤석열이 누군가. 2012년 대선 관련 국정원 댓글 조작사건을 수사하다 좌천까지 당했던 사람이다. 그가 25일 “문 대통령이 여론조작을 지시하거나 관여했을 거라는 주장은 지극히 상식적”이라며 문 대통령 수사를 위한 특검 연장 및 재개를 요구하자 다음날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배은망덕을 넘어 균형감각이 상실된 논리”라며 공격을 퍼부었다. 급소를 찔린 듯한 모습이다.

2017년 대선 여론조작 사건의 피해자를 자처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문 정권을 ‘도둑정권’이자 ‘장물정권’으로 규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허익범 특검 역시 드루킹의 댓글 조작이 대선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 이 때문에 2등 후보가 1등으로 당선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선거 승리를 위해선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수사는 반드시 재개돼야만 한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의 지지율 변동 추이. 자료: 한국갤럽

이미 구속됐던 77일을 빼고 징역 2년의 형을 살아야 하는 김경수는 앉으나 서나 주군을 지킬 걱정이겠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재인 지키기를 놓고 저희들끼리 아무리 ‘정치적 거래’를 해도, 법치와 민주주의는 함부로 무너뜨릴 수 없음을 투표로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