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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왼쪽)가 죽은 뒤 9년 동안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그의 교향곡 9번은 슈만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로써 슈만은 교향곡의 위대한 계보를 넘겨받게 된다. 동아일보DB
문화전문기자 유윤종
베토벤이 죽고 49년이 지난 1876년,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 세상에 나왔다.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이 작품을 ‘교향곡 10번’이라고 불렀다. 베토벤의 아홉 곡을 잇는 곡이라는 뜻이었다. 브람스는 완성도가 높은 교향곡 네 곡을 써서 이 전통의 적자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브람스가 한 번 본 적도 없는 베토벤의 위업을 반세기나 지나 갑자기 계승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한스 폰 뷜로의 말 한마디로 그 왕관을 순순히 넘겨줄 수 있을까.
이 교향곡 왕조의 신화를 더 완전하게 해줄 이야기가 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그레이트’)에 대한 얘기다. 이 곡이 있음으로써 교향곡의 물줄기는 베토벤에서 슈베르트, 그리고 슈만과 멘델스존, 이어서 브람스로 이어진다. 최소한 마치 그렇게 이어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연은 이렇다. 슈베르트가 죽고 9년이 지난 1837년, 음악평론가 겸 아직 무명 작곡가였던 로베르트 슈만이 슈베르트의 형 페르디난트를 찾아갔다. 페르디난트는 동생 슈베르트가 남긴 악보 꾸러미로 슈만을 안내했다. 슈만은 거기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교향곡 악보를 발견한다. 놀라움과 기쁨은 말할 수도 없었다. 슈만은 친한 친구이자 지휘자였던 멘델스존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악보를 보냈다.
이 곡은 멘델스존의 지휘로 1839년 게반트하우스에서 처음 연주됐다. 객석에 앉은 슈만은 당시 연애 중이었던 클라라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교향곡의 위대한 전통이 슈베르트로부터 그의 유작을 발견한 슈만의 손으로 인계되는 환상을 일으킨다. 슈만은 실제로 다음해인 1840년에 교향곡 1번 ‘봄’을, 그 다음해 오늘날 교향곡 4번이 되는 교향곡 d단조를 쓰는 등 교향곡 네 곡으로 선배들의 업적을 잇는다.
슈베르트의 악보더미에서 슈만이 찾아내 다시 불씨를 키워낸 교향곡의 전통은 다시 슈만의 제자였던 브람스에게 계승된다. 슈만은 독일 오스트리아 음악계에 브람스의 존재를 알린 선생이자 스승이었다.
이렇게 보면 하나의 계통도가 그려진다. 하이든이 쌓아올린 교향곡의 토대는 제자 베토벤에게 이어지고, 베토벤을 운구했고 그의 곁에 묻힌 슈베르트에게, 그 슈베르트의 교향곡을 찾아낸 슈만에게, 그 슈만의 제자 브람스에게, 그 브람스와 친교를 나눈 말러에게. 장대한 산맥이 구비치는 것처럼 이어진다.
물론 이는 신비주의적인 시각일 뿐이다. 교향곡의 세계에는 모차르트나 브루크너,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체코의 드보르자크,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등 앞에 언급하지 않은 수많은 거장들이 있다. 하지만 하이든에서 말러로 이어지는 일련의 ‘인연’들은 오늘날 그들의 음악을 듣는 음악팬들에게 신비로운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