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네거리에서 바라본 동화면세점© News1
호텔신라와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간 ‘채무 변제’를 둘러싼 법정공방이 대법원 상고까지 진행되며 4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다. 특히 양측의 갈등 중심엔 ‘국내1호 면세점’ 동화면세점이 놓여있어 이목이 쏠리고 있다.
동화면세점은 면세업계 대표 중견기업이지만 지난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타격으로 존폐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종착지로 향하고 있는 법정공방의 결론이 동화면세점 등 중견·중소 면세점들은 물론 업계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동화免 주식 담보 600억 빌려줘”…양측 입장 첨예
양측의 갈등은 지난 2013년 시작됐다. 당시 호텔신라는 김 회장의 동화면세점 주식 19.9%를 600억원에 매입했다. 계약일로부터 3년 후 호텔신라가 해당 지분을 매도할 수 있는 ‘풋옵션’(매도청구권) 권한을 주는 조항도 삽입했다. 김 회장 측은 동화면세점 지분 30.2%를 담보로 설정했다.
즉 호텔신라가 김 회장 측에 현금 600억원을 주식을 담보로 빌려주며, 김 회장이 이를 상환하지 못할시 동화면세점 지분 30.2%를 이른바 ‘위약벌’로 제공하겠다는 계약을 맺은 것이다.
3년후 호텔신라는 풋옵션 행사 의지를 밝히며 600억원을 상환할 것을 김 회장에게 요구했지만, 김 회장은 이를 상환할 수 없다며 담보로 있던 동화면세점 주식 지분 30.2%를 호텔신라에 넘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호텔신라는 이에 대해 반발했다. 김 회장이 현금 변제 능력이 있음에도 이를 갚지 않고 주식으로 대신하려 한다는 것이다. 반면 김 회장측은 계약 조항대로 이행하려 했는데 호텔신라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1심은 호텔신라가 승소했다. 당시 법원은 “원고가 매매대금 등을 받지 못하고 그보다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 대상 주식과 잔여 주식을 보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대상 주식의 매도 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재판부는 김 회장에게 호텔신라에 이자 포함 788억여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항소심(2심) 재판부는 “김 회장이 잔여주식을 위약벌로 (호텔신라에 동화면세점 주식 지분 30.2%를) 귀속시키는 이상 추가 청구하지 않기로 약정했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김 회장의 주장이 계약서 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단인 것이다.
◇사상초유 ‘경영권 떠넘기기’ 공방…동화免 운명은 ‘풍전등화’
업계에선 양측의 계약 체결 이후 발생한 ‘돌발변수’가 양측의 갈등이 촉발된 도화선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2013년 면세점 운영 특허가 대기업과 중견·중소로 나눠 대기업이 중견·중소 면세점을 운영할 수 없도록 하는 관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대기업집단에 속한 호텔신라가 중견·중소로 분류되는 동화면세점을 인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동화면세점은 2017년 ‘사드’ 사태 이후 줄곧 경영 악화를 겪으며 장외 주식의 가치 또한 급격히 하락한 것으로 관측된다. 호텔신라 입장으로선 현금을 돌려받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애물단지’만 껴안는 상황이 돼버리는 셈이다.
실제 1심 재판부는 판결 당시 “매매대금보다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 주식과 잔여 주식을 보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대상 주식의 매도 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않은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김 회장 측은 계약상, 그것도 호텔신라에서 먼저 요구한 ‘풋옵션’ 등 조항을 충실히 이행하려 했으며, 이에 따르면 현금 채무는 변제할 의무가 없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2심 재판부는 “전체 주식의 50.1%가 되도록 잔여주식의 양을 정해 무상 귀속 시키는 위약벌 규정은 호텔신라가 만들었다”며 “경영권 취득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같이 양측의 주장이 첨예한 데다 1~2심 재판부의 판결처럼 ‘유권해석’에 따라 사실에 대한 법적 판단도 엇갈리는 상황이다. 이때문에 대법원의 고심도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상 초유의 ‘경영권 떠넘기기’ 공방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에 놓인 동화면세점은 더욱 곤란한 처지에 몰렸다.
호텔신라의 패소로 결론나면 관련 법에 따라 정상적인 인수 및 운영 자체를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고 김 회장 측이 패소한다고 하더라도 ‘현상유지’만 가능할뿐 ‘정상화’를 위한 반전 마련은 힘들 것이란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SM 등 중소중견 기업뿐 아니라 두산, 한화 등 대기업까지 면세사업을 정리했다. 설상가상 코로나19 사태로 신세계면세점 강남점마저 지난 17일 문을 닫는 등 업계 전반의 위기가 가중되는 상황”이라며 “대법원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든 동화면세점의 앞날은 불투명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