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시상식에서 진행요원들이 ‘Mask On/Off’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도쿄=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홍진환 사진부 기자
무관중 경기에 대한 우려는 곧바로 현실이 됐다. 양궁 혼성단체전에 출전한 막내들이 네덜란드를 물리치고 도쿄 올림픽 첫 금메달을 대한민국에 안긴 24일, 승리가 확정된 순간에도 관중의 함성이 터져 나와야 할 양궁장은 너무나 조용했다. 선수들조차 예전처럼 환호성을 지르거나 화려한 세리머니를 펼치지 못했다. 조직위가 코로나19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이러한 행동을 엄격하게 제한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박수를 치거나 침방울이 튀지 않는 방법으로 기쁨을 표현해야 한다는 게 조직위의 방침이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올림픽 장면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두 팔을 치켜들고 잠시 승리의 기쁨을 표현했던 우리 선수들은 곧바로 마스크를 써야 했다. 준우승을 차지한 네덜란드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방역지침 탓에 상대편 선수와의 인사는 주먹을 마주치는 것으로 끝났다. 그동안 올림픽에서 봐왔던 승자와 패자의 뜨거운 포옹도 없었다. 태극기를 둘러메고 경기장을 돌던 우리 선수들의 들뜬 표정은 이내 하얀색 마스크에 감춰졌다. 극적인 순간을 포착해야 하는 사진기자들에게도 이런 상황은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올림픽 뉴스에서 수없이 봤던 메달 깨무는 모습도 원칙적으로 금지사항이다. ‘메달 깨물기’ 세리머니는 더 이상 찍을 수 없는 사진이 되었다. 이날 혼성단체전 시상식이 너무 삭막했던지 다음 날인 25일 진행되었던 여자 양궁 단체전 경기 시상식에서는 30초 동안 마스크를 벗는 것이 허용됐다. ‘Mask On(마스크 쓰세요)’과 ‘Mask Off(마스크 벗으세요)’가 적힌 손 팻말을 든 진행요원들 안내에 따라 시상대에 선 선수들이 마스크를 쓰고 벗는 촌극이 벌어졌다. 강채영 선수가 금메달을 깨무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을 두고서 일부 언론사는 방역규정 위반을 우려하며 메달을 들고 있는 평범한 사진을 찾기도 했다.
기묘한 올림픽 풍경은 경기장 밖에서도 목격되고 있다. 올림픽 개막으로 도심 곳곳이 축제 분위기로 가득 차야 할 시점이지만 경기가 열리는 도쿄를 비롯한 주요 도시는 너무나 조용한 분위기다. 그 흔한 길거리 응원도 없다. 5년 전 브라질 리우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선수들과 관광객들로 온종일 북적였다. 각종 축하행사가 줄을 이었고 경기장 주변에서 독특한 복장을 한 응원단을 찍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이런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23일 개막한 올림픽이 아직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 경기장 안팎에서는 그동안 익숙했던 올림픽의 장면들은 사라져 버렸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올림픽’이 바로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역대 올림픽에서 카메라에 기록되었던 감동의 순간들을 떠올리면 요즘의 상황이 더욱 아쉽게만 느껴진다. 코로나19 감염을 무릅쓰고 거대 스포츠 이벤트 개최에 모든 것을 다 걸었지만, 지구촌 축제가 되어야 할 올림픽은 너무도 초라하다. 선수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코로나에 안 걸리는 게 금메달을 따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한 말이 아닌 듯하다.
―도쿄에서
홍진환 사진부 기자 je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