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하얏트호텔 더라운지의 애프터눈 티 세트 중 빙수. 이상황 씨 제공
이상황 배리와인 대표
호캉스까지는 아닐지라도 36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에 주말 오후 가족과 느긋하게 즐길 만한 코스를 소개합니다. 애프터눈 티 코스! 영국이나 홍콩에서 즐기는 게 제맛이긴 하지만, 시절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라도 즐겨보시는 게 어떨지요. 추천하고 싶은 곳은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파크하얏트호텔 더라운지입니다. 24층 로비 라운지에 있어 루프톱에 올라온 것같이 개방감이 좋습니다. 특히 북측 창가에 앉으면 코엑스와 영동대로 일대를 가로질러 저 멀리 북한산까지 훤하게 뚫린 뷰가 일품이지요.
주문하면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준비되므로 더 맛있게 즐기려면 먹는 순서에 교통정리가 필요합니다. 나름의 ‘마리아주(mariage)’가 필요한 거지요. 마리아주는 프랑스어로 결혼이라는 뜻인데, 우리말로는 ‘궁합’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먼저 따뜻하게 제공되는 커피나 차를 제일 아래 트레이의 스콘, 그리고 중간 트레이의 샌드위치, 타르트 등과 함께 마셔줍니다. 그러고 나서 맨 위 트레이의 디저트류, 그리고 아래 트레이의 과일을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스파클링 와인인 프로세코와 함께 맛봅니다. 상큼하고 신선한 맛이 달콤한 맛을 받쳐줘서 한층 맛을 ‘업’시켜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빙수로 입가심을 해줍니다. 차가운 빙수를 먼저 먹게 되면 혀 위의 미각세포들이 긴장을 해서 다른 맛을 느끼기 힘듭니다. 빙수는 녹지 않도록 꼭 마지막에 따로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차, 스파클링 와인, 빙수, 이런 순서로요.
빙수는 수박화채와 더불어 무더위를 식혀줄 대표적인 여름 주전부리입니다. 큼지막한 얼음덩이를 썩썩 갈아내어 단팥을 얹고 미숫가루와 연유를 올린 후 색색 달콤한 시럽으로 장식합니다. 몇 숟가락 먹다 보면 입안이 얼얼하고 눈 안이 찡하게 시려서 통증까지 느껴지곤 합니다. 단맛이 그 통증을 보상해 주지요. 빙수는 이렇게 자극적이고 불량기 다분한 거리의 주전부리였지만, 요즘은 비싼 애플망고 등을 두르고 괄목상대할 만한 ‘신분 세탁’을 하고 있습니다.
파크하얏트호텔의 애프터눈 티에 제공되는 보타닉 망고 빙수는 새싹보리를 넣어 얼린 얼음에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넣고 제주산 망고를 얹었습니다. 빙수지만 단맛도 차가움도 그다지 강하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습니다. 쌉쌀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올라와 옛 빙수의 미숫가루 느낌도 살짝 나네요. 옛 빙수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따로 비싼 돈을 주고 사 먹기는 쉽지 않지만 이렇게 애프터눈 티에 함께 제공되는 것이라면 한번쯤 호사를 부려 봐도 좋을 듯합니다.
이상황 배리와인 대표 wine@verais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