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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스’ 남자펜싱, 金을 찔렀다…“비결은 팀워크”

입력 | 2021-07-28 21:06:00


오상욱, 구본길, 김정환, 김준호가 28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B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태극기를 들고 있다.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홍진환 기자


“비결이요? 팀워크입니다.”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세계 랭킹 1위다. 2019년 10개 국제대회에서 무려 9차례 우승하며 ‘어벤저스’라고 불렸다. 당시 연이은 우승 비결을 묻자 구본길(32)은 ‘팀워크’라 답했다.

28일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8강전은 물론 준결승에서도 엎치락뒤치락하는 접전을 벌였다. 한 선수가 실점하면 다른 선수들이 먼저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잘했다”, “할 수 있다”며 응원했다. 한국이 앞서 나갈 때면 ‘맏형’ 김정환(38)이 “들뜨지 말고 집중하자”고 말하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이날 세계랭킹 3위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팀이 위기에 몰릴 때는 김정환이 우렁찬 목소리로 동생들에게 파이팅을 넣어줬다. 동생들도 맏형의 리더십을 따라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환상의 팀워크가 있었기에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9년 만에 2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다. 2012 런던 올림픽 때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여름과 겨울 올림픽을 합쳐 한국의 100번째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이 영광을 달성하기 까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한 때 4명 선수 모두 잘생긴 외모로 ‘판타스틴 포’, 미남 검객’이라 불렸지만 거친 고난을 겪은 탓인지 도쿄 땅을 밟았을 때는 ‘품격 검객’으로 거듭나 있었다.

세계랭킹 1위이자 대표팀 ‘에이스’ 오상욱(25)은 지난해 3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국제펜싱연맹(FIE) 사브르 월드컵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2018∼2019시즌부터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검객이지만 코로나19로 주춤했다. 완치 후 이번 대회 개인전 금메달을 노렸지만 8강에 그치며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구본길이 28일 일본 지바의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린 2020도쿄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에서 이탈리아 루카에게 찌르기 공격을 성공시키고 있다.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홍진환 기자

독일과의 준결승전부터 맹활약을 펼치며 위기 때마다 팀을 구해낸 구본길(32·9위)도 32강전에서 떨어졌다. 구본길은 “개인전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내려와서 경기 감각이 전혀 없었다”며 “오늘 첫 게임에서 시험을 해야 하는데 확신이 없었고 불안했는데 간절함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구본길은 김정환과 함께 10년 넘게 한국 남자 사브르를 이끌고 있다. 2008년 구본길이 처음 태릉선수촌에 들어갔을 때부터 한 방을 썼던 둘은 이제 눈빛만 봐도 서로의 검이 어디로 향할지 짐작할 수 있다. 두 선수는 동반 그랜드슬램(올림픽, 아시아경기,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4개 대회 우승)도 달성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단체전 금메달 이후 한 차례 은퇴를 선언했다 돌아온 김정환도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걸긴 했지만, 숱한 고난이 있었다. 한 차례 대표팀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동안 세계 랭킹은 15위까지 떨어졌다. 체력에 대한 부담과 부상 위험도 있었다. 김정환은 “맏형 입장에서 동생들이 잘해줘 고마웠다”며 공을 동생들에게 돌렸다. 예비선수로 출전한 김준호(27)도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왼발 힘줄이 찢어지는 등 힘든 시간을 겪은 끝에 도쿄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올림픽 시작 전부터 선수 모두 “개인전보다는 단체전이 중요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구본길은 결승전을 앞두고 물 이외에 어떤 음식도 먹지 않으며 투혼을 발휘했다. 김준호도 “시합 전 음식을 먹는 대신 하나라도 더 배우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오상욱은 자신이 존경한다고 꼽은 김정환의 조언을 들으며 집중력을 높였다. 맏형 김정환은 동생들을 다독였다.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와 동메달 2개를 딴 김정환은 “올림픽은 내게 행운의 무대”라며 동생들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동생들도 미소로 답했다.

지바=김정훈 기자 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