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에 징벌적 배상금 물리자는 與 권력 감시 막는 유례없는 입법 멈춰야
이진영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이 27일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 의무를 부과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통과시켰다. 언론의 허위 보도에 피해액의 5배까지 배상금을 물리고, 배상액의 하한선을 둔 법안이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감시 기능을 위협하는 이런 법을 둔 민주주의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 법안을 다음 달 25일 소속 상임위원장 자리를 넘겨주기 전에 처리하겠다며 야당엔 세부 내용도 알려주지 않고 쫓기듯 밀어붙였다.
법안의 내용과 처리 방식 모두 상식이나 법리로 따지려 드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여당이 주장하는 언론개혁의 기원과 연결지어야 하는데 마침 권경애 변호사가 저서 ‘무법의 시간’에서 새삼 그걸 일깨워준다. 참여연대와 민변에서 활동하며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권 변호사는 조국 사태를 계기로 두 단체에서 탈퇴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쓴 ‘문재인의 운명’에서 “검찰과 언론이 한통속이 돼 벌이는 마녀사냥” 구절을 인용한 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가족과 측근의 부패 때문이 아니라 검찰과 언론 때문이라는 프로파간다에 성공했다”고 썼다. 여당의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원한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시작점이 어디든 개혁이 제대로 된다면 누가 뭐라 할까. 하지만 검찰개혁이 ‘정권 수사 힘 빼기’였듯 언론개혁도 개혁이 아니다. 언론개혁의 지향점은 권 변호사가 ‘친노 친문 지지자의 행동 강령’이라고 소개한 ‘왕따의 정치학’에 적나라하게 나온다. 노 정부에서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현 정부 초기에 낸 책이다.
현 정부 출범 후 한국기자협회가 선정한 한국기자상 수상작들은 ‘라임 펀드, 美 폰지 사기에 돈 다 날렸다’(한국경제신문) ‘형제복지원 절규의 기록’(부산일보) ‘인보사, 종양 유발 위험… 허가 과정 의혹’(SBS)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 과정 추적’(동아일보) 등이다. 언론에 나쁜 일로 오르내리는 이들은 이렇게 권력을 쥐고 약자에게 피해를 주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언론에 징벌적 손배제가 도입되면 제 발 저린 사람들이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 보는 ‘전략적 봉쇄’ 소송이 남발할 것이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가짜 뉴스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 구제”를 입법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속내는 민주당에서 탈당한 이상직 무소속 의원의 국회 발언에 더 가까워 보인다. 회삿돈 555억 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기 전 이 의원은 2월 문체위에서 “징벌적 손배제는 여기 앉아 있는 분들이 가짜 뉴스와 싸울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장치”라고 주장했다. 유엔이 인정한 선진국에서 왜 국회에 앉아 있는 분들 같은 힘 있는 사람들만 재미 보는 언론 악법을 밀어붙여야 하나.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