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27일 중국 베이징 시내에서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서비스 ‘디디추싱’을 이용해 차량에 탑승했다. 기자가 차 안에서 촬영한 앱 화면. 지난달 30일 당국 반대에도 미국 증시 상장을 강행한 디디추싱은 이후 제재로 신규 가입자를 받을 수 없고 신규 앱 다운로드 또한 불가능하다. 기존 가입자들만 이용할 수 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웨이보 캡처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디디추싱은 회원 6억 명, 월평균 사용자가 6000만 명에 달한다. 중국 내 시장 점유율 또한 90%에 달해 사실상 거의 모든 중국인이 이용한다. 하지만 당국은 지난달 30일 디디추싱이 당국 반대에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강행하자 이후 강도 높은 규제를 쏟아내고 있다. 우선 디디추싱의 신규 앱 다운로드 및 신규 회원 가입을 모두 차단했다. 또 해외 증시 상장을 추진하는 정보기술(IT) 기업으로 하여금 반드시 당국의 사전 허가를 얻도록 규정을 바꿨다.
1500만 명에 달하는 디디추싱 운전사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27일 베이징 시내에서 만난 운전사는 “기존 이용자가 많아서 아직은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당국이 제재를 멈추지 않으면 이 일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밤잠을 이룰 수 없다”고 토로했다.
中 “공산당 축제에 찬물 끼얹어”
당국은 디디추싱 제재 당시 그 이유로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위법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내세웠다. 특히 디디추싱의 미 증시 상장 과정에서 주요 데이터가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갖지 못한 방대한 데이터를 민간 기업이 갖고 있는 것도 문제인데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이 이 정보를 보유할 가능성을 극도로 우려한다는 의미다.
중국 안팎에서는 당국이 ‘데이터 안보’가 아니라 디디추싱, 알리바바, 텐센트 등 급격히 덩치를 불린 IT 공룡 기업이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에 위협이라는 점을 더 우려하는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대만 영문매체 타이완뉴스는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공산당은 당의 통제를 벗어난 인터넷 기업을 체제 위협 요인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디디추싱은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꼭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NYSE에 입성했다. 시 주석은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중국을 괴롭히는 외부세력은 14억 중국인의 피와 살로 만든 강철 만리장성 앞에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릴 것(頭破血流·두파혈류)”이라고 외치며 미국과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 IT 기업이 당국 반대에도 미 증시 상장을 강행했다는 점은 시 주석을 포함한 중국 수뇌부에 대한 정면 도전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산당은 지난해 12월 정치국 회의, 중앙경제공작회의 등을 통해 ‘반독점’, ‘자본의 무질서한 확장 방지’를 처음 중점 정책 의제로 제시했다. 올해 들어서도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연례회의 등을 통해 연일 인터넷 기업에 대한 압박과 규제를 강화했다.
2012년 말 집권한 시 주석은 내년 말 두 번째 임기가 끝난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모든 중국의 최고지도자는 10년씩 집권했다. 하지만 시 주석은 내년 10월 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집권을 연장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2018년 개헌을 통해 이미 국가주석의 3연임 제한을 폐지한 상태다.
“빅테크 통제로 5경원 손해”
중국 차량공유 앱 디디추싱을 이용하는 고객이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바이두 캡처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프레더릭 켐프 최고경영자(CEO)는 10일 미 CNBC 기고문에서 “중국 공산당이 앞으로도 디디추싱에 했던 수준의 강력한 규제를 고수하면 중국 경제 성장세가 둔화해 2030년까지 총 45조7000억 달러(약 5경2000조 원)의 손해를 감수해야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산업 전반의 역동성도 떨어진다. 우선 한창 나이의 젊은 IT 기업인이 잇따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있다. 전자상거래업체 핀둬둬의 황정(黃쟁·41) 창업자는 3월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다. 특별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회사의 핵심 사업과도 무관한 “생명공학 공부에 매진하겠다”고만 밝혔다. 장이밍(張一鳴·38) 바이트댄스 창업자 겸 CEO 또한 5월 CEO직을 내려놨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가 지난해 10월 당국의 금융 규제를 ‘전당포 영업’이란 용어로 공개 비판했다가 3조 원이 넘는 과징금 철퇴를 맞고, 알리바바 계열사의 홍콩 증시 상장 또한 무기한 연기된 사건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음식배달 앱 메이퇀의 왕싱(王興·42) 창업자 또한 언제든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는 5월 소셜미디어에 당나라 시인 장갈이 고대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비판하려고 쓴 한시 ‘분서갱(焚書坑)’을 언급했다. 분서갱유 언급은 노골적 체제 비판을 의미해 금기로 여겨진다. 논란이 확산되자 “당국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업계의 과도한 경쟁을 문제 삼았다”고 해명했지만 해당 글을 지웠다.
“뺏기느니 차라리 기부?”
레이쥔(雷軍·52) 샤오미 공동 창업자는 최근 보유 주식 22억 달러(약 2조5137억 원)어치를 재단 2곳에 기부했다. 왕싱 메이퇀 창업자와 장이밍 바이트댄스 창업자는 모두 지난달 각각 23억 달러(약 2조6280억 원), 7억7000만 달러(약 884억 원)를 기부했다. 4월 마화텅 텐센트 창업자 또한 “재난재해 및 농촌의 가난 극복을 위해 77억 달러(약 8조8958억 원)의 회사 자금을 챙겨두겠다”고 밝혔다. 미 블룸버그뉴스는 “IT 기업 창업주가 갑자기 강한 ‘자선 충동’을 보이는 것은 당국의 규제 강화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