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모터스포츠에서 활약한 DBR1 경주차의 디자인 테마를 반영한 애스턴 마틴 V12 스피스스터. 애스턴 마틴 라곤다 제공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컨버터블은 흔히 오픈카라고도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컨버터블을 오픈카라고 부르는 것은 지붕을 벗겼을 때에만 맞는 표현이다. 그리고 거리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울 뿐, 오픈카로 분류할 수 있는 차들은 사실 무척 다양하다. 아예 지붕이 없는 차들도 있는데, 이런 차들이야말로 순수한 의미의 오픈카라고 할 수 있다.
지붕을 접고 펴는 기능은 물론이고 탈착식 지붕조차 없는 차는 일반 도로에서 보기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햇빛이나 먼지, 눈 또는 비로부터 차에 탄 사람을 보호할 수가 없어 불편하다는 것이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실내 공간이 외부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붕이 없어 주변 환경에 의해 실내가 오염되기 쉬운 데다 실내에 있는 물건은 물론 차 자체를 도난당할 가능성도 커진다. 혹시 차가 전복되는 사고라도 나면 탑승자가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는 점도 있다.
맥라렌 엘바. 공기흐름 조절 시스템이 있어 주행 중에도 탑승자에게 직접 바람이 닿지 않는다. 맥라렌 오토모티브 제공
2018년에 선보인 페라리 몬자 SP1과 SP2는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가 만드는 특별 한정 생산 오픈 스포츠카의 유행을 이끈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델 이름에 쓰인 몬자(Monza)는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자동차 경주장이 있는 도시 이름이면서 1950년대 주요 경주를 휩쓴 경주차들인 750 몬자와 860 몬자의 이름을 가져온 것이기도 하다.
몬자 SP1은 운전석만 있는 1인승, 몬자 SP2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는 2인승이라는 차이를 제외하면 다른 부분은 거의 같다. 차체 위쪽은 사람이 타는 부분만 트여 있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막혀있을 뿐 아니라 앞유리도 없다. 그 대신 외부로 노출되는 탑승자의 몸에 바람이 닿지 않도록, 탑승 공간 앞쪽에는 공기 흐름을 유도하는 ‘가상 윈드실드’ 구조로 되어 있다.
탑승 공간 뒤쪽에는 전복 때 탑승자를 보호하는 롤 바가 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차체 곡선은 옛 경주차를 연상케 한다. 차체 앞쪽의 긴 보닛 아래에 담긴 V12 6.5L 엔진은 810마력의 힘을 내, 정지 상태에서 2.9초 만에 시속 100km까지 가속할 수 있다. 페라리는 구매자들을 위해 럭셔리 브랜드 로로 피아나와 베를루티와 협업해 차와 어울리는 스타일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도록 의류와 액세서리도 만들었다.
1950년대 경주차에 대한 경의를 담은 페라리 몬자 SP1(오른쪽)과 SP2. 페라리 제공
최근에는 애스턴 마틴도 V12 스피드스터로 오픈 스포츠카 한정 생산 대열에 합류했다. 애스턴 마틴은 88대 한정 생산될 예정인 이 차가 DBR1 경주차의 유산을 계승한다고 주장한다. DBR1 경주차는 1957년부터 1959년까지 뉘르부르크링 1000km 경주에서, 1959년에는 르망 24시간 경주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강력한 경주차다. 애스턴 마틴은 차의 상징성을 고려해 V12 스피드스터에 DBR1 경주차의 차체에 쓰인 녹색과 흰색 장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차체를 칠하는 데에만 50시간 이상이 걸릴 만큼 공을 들였다는 설명이다. 실내는 고광택 탄소섬유 소재와 더불어 반광택 처리된 알루미늄, 가죽으로 감싼 내장재 등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이 차에는 700마력의 힘을 내는 V12 5.2L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이 올라가 정지 상태에서 3.4초 만에 시속 100km까지 가속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차의 또다른 공통점은 순수한 가솔린 엔진, 즉 내연기관을 동력원으로 쓴다는 점이다. 자동차의 전동화 흐름에 따라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들도 차츰 동력원을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나 전기 모터로 전환하고 있지만 엔진을 통해 성능과 속도의 극한을 추구하며 치열하게 경쟁했던 시대의 감성은 엔진 이외의 것으로는 구현할 수 없다. 그래서 여러 브랜드들은 고전적 스포츠카의 감성을 운전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이제는 고전적 기술이 되어가고 있는 엔진을 택했다.
어찌 보면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들은 스포츠 드라이빙의 쾌감을 가장 발전된 기술과 모습으로 즐길 수 있는 차를 통해, 스포츠카 내연기관 시대를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마침표를 찍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차들을 손에 넣는 극소수의 오너들 역시 같은 생각일 것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