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용무가 있어 부산을 찾았다. 일을 마친 뒤 오전 4시경 일어나 부산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타러 나섰다. 서면에서 출발한 택시를 타고 부산역으로 가는 중 면허 관계로 자주 들렀던 부산해양수산청, 그리고 5부두를 지나자 오랜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입항과 출항, 승선과 하선을 반복하며 이어졌던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이미 30∼40년 지난 일이지만 또렷하다. 밤을 새워 진행된 하역 작업이 끝나면 도선사가 승선하면서 ‘출항 준비’ 방송이 나온다. 만남의 반가움이 있는 입항과 달리 출항 때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선원들 모두 익숙한 듯 묵묵히 부산항을 떠났다. 배가 출항해 동해안에서 쓰가루해협을 지나 태평양으로 접어들면, 모두 밝은 표정을 되찾아 부산항의 추억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그리고 20일간 항해를 이어갔고, 또 다른 항구에 입항을 준비했다. 1년이 지나면 어느덧 꿈에 그리던 휴가를 얻는다.
망망대해에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을 육지 사람들과 이별했다. 배에서의 생활이 즐겁고 좋아서 승선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직업인으로서 선원이 됐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목돈을 모아야 했다. 육지, 가족과 떨어져 지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곧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긍정적으로 보냈다. 그래도 고독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승선하지 않는다. 이번 부산 일정은 그저 1박 2일의 여정이었다. 더 이상 긴 헤어짐과 이별은 없다. 그런데 부산을 떠나는 순간 느낀 헤어짐에 대한 감정은 뭘까. 승선 당시 느꼈던 왠지 모를 외로움, 허전함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배에 오르는 게 아니라 육지의 직장으로 가는 길임에도.
어쩌면 승선 당시 느낀 감정은 모든 헤어짐에 동반되는 보편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면 누구나 무언가 채우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 욕망의 잔상이 공허함이 아닐까.
그 주기가 과거에 비해 아주 짧아졌을 뿐 나는 여전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다. 이런 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일주일이 된다. 사람은 만남과 헤어짐을 수만 번 반복한다고 하는데 그 간격이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1년이 넘는 경우도 있다. 그 무대가 바다일 때, 아쉬움과 애틋함은 더 깊어져 오랜 여운을 남기게 되는 듯하다. 바다는 그 애틋함을 승화시키는 방법도 알려주었기에 선원들은 승선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제야 바다에서 헤어짐의 의미를 깨닫는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