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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반독점 원칙’ 흔든 32세 女전사…아마존-페북 등 초긴장[글로벌 포커스]

입력 | 2021-07-31 03:00:00

‘빅테크 저승사자’ 리나 칸 美 FTC 위원장
기자 꿈꾸던 파키스탄계 소녀
FTC 107년 역대 최연소 수장
바이든정부 ‘빅테크와 전쟁’ 선봉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업 간 경쟁을 확대하고 독과점 관행을 단속하는 ‘경쟁 촉진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등 소위 빅테크 기업이 작은 회사를 속속 인수합병(M&A)하고 파격적인 가격 할인을 앞세워 경쟁 업체를 고사시킨다며 강도 높은 규제를 천명했다. 지난달 이 업무를 담당할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수장으로 취임한 리나 칸 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을 지켜보고 있다. 칸 위원장의 왼쪽은 피트 부티지지 교통장관. 워싱턴=AP 뉴시스


《 “아마존은 21세기 상거래의 타이탄(거인)이다.”

지난달 15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새 수장으로 취임한 파키스탄계 여성 리나 칸 위원장(32)이 2017년 1월 예일대 로저널에 게재한 논문의 첫 문장이다. 당시 예일대 로스쿨 재학생이었던 그는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Amazon‘s Antitrust Paradox)’이란 96쪽짜리 논문으로 일약 미 법조계의 스타가 됐다.

그는 논문에서 “전통적 관점에서는 상품 가격에 영향이 없다면 특정 기업의 독점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마존 같은 새로운 형태의 정보기술(IT) 기업에는 적합하지 않다”며 강도 높은 규제를 촉구했다. 대표적인 독점 폐해는 가격 담합 및 인상이므로 ‘최저가’와 ‘인수합병(M&A)’ 등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아마존을 규제할 수 없다는 법조계의 기존 해석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이 논문은 온라인으로 발표되자마자 15만 명이 열람했고 칸 또한 ‘아마존 킬러’로 명성을 떨쳤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소위 ‘빅테크 기업’의 독점, 개인정보 보호 소홀, 가짜뉴스 범람 방치, 중산층 일자리 침해 등을 문제 삼았다. 취임 후에는 빅테크를 겨냥해 “경쟁 없는 자본주의는 착취”라는 발언도 내놨다. 이런 그가 칸을 1914년 설립된 FTC 107년 역사상 최연소 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은 집권 내내 빅테크와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어려서부터 권력 감시 주창

칸은 198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고 11세 때 미국에 왔다. 그는 10대 시절 기자를 꿈꿨다. 힘 있는 자를 감시하고 그들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언론계에 종사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미 북동부 매사추세츠주의 인문학 명문학교 윌리엄스칼리지에 진학한 칸은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칸은 학생기자 시절 뉴욕 인근의 스타벅스 가게가 학생들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매장을 점유한다는 이유로 매장 내 착석을 금지하자 이를 질타하는 고발 기사를 썼다. 당시 스타벅스 측이 취재 요청을 거부하자 해당 매장의 직원을 일일이 인터뷰해가며 기사를 작성했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2011년 수도 워싱턴의 진보 싱크탱크 뉴아메리카재단 연구원이 된 후 미 거대 기업의 폐해를 연구했다. 시장을 지배하는 독점 기업 때문에 소비자가 얼마나 선택권의 제한을 받고 있는지, 온라인 마켓에서 아마존 같은 거대 플랫폼이 어떻게 소규모 판매상을 장악하는지 등이 주요 관심사였다.

2013년 10월 핼러윈 당시 칸이 시사매체 타임에 기고한 글은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동네 마트에 갔는데 40여 개 브랜드의 사탕이 있었다. 거의 모두 허시, 마스, 네슬레 3개 회사가 만든 제품이었다. 핼러윈을 맞아 미 전역에서 발생하는 20억 달러(약 2조3000억 원)의 사탕 매출은 두세 개 기업의 금고로만 들어가는 셈이다.”

칸은 “과거에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마을에서 생산한 캔디를 먹을 정도로 미 전역에 다양한 종류의 캔디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 했고, 큰 기업이 작은 경쟁 기업을 삼키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대기업이 M&A를 통해 경쟁사를 속속 사들이면서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고 시장 독점의 폐해가 커진다고 질타했다.

○ FTC 최연소 수장이 된 법률 신동

2014년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한 칸은 3년 후 자신의 반독점 연구를 집대성한 반(反)아마존 논문을 출간했다. 칸은 아마존이 영위하는 수많은 사업을 나열한 뒤 개인 소매업자와 중소기업은 아마존 플랫폼을 쓰지 않으면 상품 판매가 불가능한데도 현재의 반독점 규제가 오로지 ‘가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마존이 최저가와 M&A를 무기로 주요 경쟁자를 모두 제거한 후 시장을 독점하면 굳이 가격을 인상하지 않아도 소비자를 상대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데도 현재 법률로는 이를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매업자는 아마존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으면 소비자와 만날 기회 자체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개별 국가를 넘어 전 세계를 장악한 IT 공룡기업의 확장 비결과 폐해를 신선하게 분석한 칸의 논문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NYT 등 주류 언론은 ‘법률 신동이 나타났다’ ‘수십 년간 굳어졌던 반독점법을 새로 정의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칸은 아마존을 거의 이용하지 않지만 심장 전문의인 그의 남편 샤 알리는 ‘아마존 프라임’이란 유료 멤버십 회원이란 점도 주목받았다. 둘은 2018년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칸은 미 기업과 민주주의에 관한 책, 알리는 19세기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책을 들고 갔을 정도로 취향이 다르다.

2020년 7월 컬럼비아대 로스쿨 부교수가 된 칸은 당시 하원 법사위원회가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 4대 빅테크 수장을 청문회에 불러들였을 때 이들을 비판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며 워싱턴 정계에도 눈도장을 찍었다. 당시 법사위는 4대 빅테크가 록펠러, 카네기 등 19세기 미 경제를 좌우했던 소수의 석유 및 철도 재벌에 맞먹는다며 당시와 유사한 독점이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칸의 반(反)아마존 논문을 그대로 옮긴 주장이다. 칸이 상원 인준 당시 전체 100명 중 69명의 지지를 얻어 FTC 수장에 오른 것은 50석을 차지한 집권 민주당은 물론이고 야당 공화당 의원들도 그의 빅테크 규제에 상당 부분 동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FTC는 주요 독점금지법의 실제 감사, 불공정 경쟁 방지, 과대광고 단속 등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1130명의 직원과 연 3억1100만 달러의 예산을 보유했다. 특정 기업의 M&A 때 반독점법 위반 여부를 검토한 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연방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해서 이를 막을 수 있다. 이 M&A 저지에는 위원 5명의 합의가 필요하다. 현재 위원 5명은 칸을 포함해 민주당이 임명한 3명, 공화당이 임명한 2명으로 이뤄졌다. 특히 위원장은 직권으로 반독점 조사를 지시할 수 있다.

○ “MGM 인수 못 해” vs “아마존 심사 말아야”

칸은 취임 일성으로 “FTC는 불공정하고 기만적인 관행으로부터 소비자, 노동자, 정직한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임무를 다하겠다”며 빅테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아마존에 대한 첫 번째 공격은 영화 ‘007시리즈’로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사 MGM 인수의 적정성 판별 작업이다. 앞서 5월 아마존은 84억5000만 달러에 MGM을 사들이겠다고 밝혔다. FTC는 아마존이 넷플릭스, 디즈니 등이 경쟁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도 진출하기 위해 MGM을 노린 것으로 보고 계약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의 반격 또한 거세지고 있다. 칸의 취임 15일 만인 지난달 30일 아마존은 FTC에 “칸이 아마존 사건을 맡으면 안 된다”며 직무집행 배제, 즉 ‘기피(recusal)’를 신청했다. 그간 칸이 반복적으로 아마존의 반(反)독점법 위반을 주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공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아마존 사안을 검토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달 14일에는 페이스북도 칸에 대한 기피 신청에 가세했다. 그간 FTC는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 등 주요 경쟁 소셜미디어를 속속 인수해 독점을 저질러왔다고 주장해왔다. 앞서 지난달 28일 수도 워싱턴 연방법원은 FTC가 페이스북에 제기한 반독점 소송을 법적 근거 부족으로 기각했다. 하지만 FTC가 다시 페이스북을 기소할 수 있는 만큼 칸이 개입할 여지를 차단하려는 의도에서 기피 신청에 가세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정 기업이 FTC 위원장에게 제기한 기피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사례는 많지 않다. 즉 칸이 자진해서 사건에서 손을 떼지 않으면 신청 자체가 효력을 발휘하긴 어렵다. 다만 대형 빅테크가 잇따라 FTC 수장에 대한 기피 신청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양측 대결이 격화될 것임을 예고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법원이 특정 기업의 FTC 위원장에 대한 기피 신청을 받아준 마지막 시점은 1966년이다. 당시 법원은 제약사 아메리칸사이나미드가 폴 딕슨 당시 FTC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제약사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FTC가 아메리칸사이나미드 항생제의 독점 문제를 조사하자 회사 측은 “딕슨 위원장이 과거 상원 법사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할 때 이번 사안과 비슷한 조사를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편견 없이 사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낮으므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고 받아들여졌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상원 재무위원장을 지낸 공화당 거물 오린 해치 전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FTC 수장을 지낸 조슈아 라이트 전 위원장 등은 칸을 ‘반독점 힙스터(hipster antitrust)’로 부른다. 힙스터는 ‘유행과 인기를 좇는 사람’이란 뜻으로 칸의 이론이 정통 경제학설이 아닌 반(反)기업을 구호로 내세우는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담았다. 빅테크가 가져온 소비자 편익을 고려하지 않은 채 플랫폼 기업을 다 없애고 석기시대로 돌아가자는 식의 과격한 주장만 한다는 의미다. 아마존은 빅테크를 옹호하는 각종 논문에 대대적인 연구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 빅테크 전사 3인방

바이든 행정부에는 칸 외에도 빅테크 규제에 힘을 보탤 두 명의 인사, 즉 팀 우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특별고문(49)과 조너선 캔터 법무부 반독점국장(47)도 있다. 대만계와 영국계 혼혈인 우 고문은 사용자, 통신장비, 전송 방식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인터넷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망 중립성(net neutrality)’ 개념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그는 2018년 저서 ‘큰 것의 저주’를 통해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를 강하게 비판했다. 20일 법무부 반독점국장에 지명된 캔터는 지역 맛집을 알려주는 소셜미디어 옐프 등이 구글을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 소송의 변호사로 활동하며 ‘구글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세 사람은 한때 혁신의 상징이었던 빅테크가 갖가지 반(反)경쟁적 행위로 혁신의 장애물이 됐다고 비판한다. 미래 경쟁업체가 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모조리 사들여 경쟁을 회피하고 시장지배력을 강화했으며, 경쟁업체의 싹을 자르기 위해 손실을 감수하고도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해 새로운 기업의 탄생을 막았다는 것이다. 또 자사 플랫폼에 입점한 업체에 자사의 또 다른 제품과 서비스를 강매하고, 공개되지 않은 소비자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활용해 자신들의 광고 매출 등을 늘린다는 점도 지적한다.

즉 자신들이 일부러 빅테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미 자본주의를 더 부강하게 만들고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독려하기 위해 빅테크의 불공정행위를 문제 삼는다는 주장이다. 과연 이 3인방과 빅테크가 벌이는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