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밑줄친 한국사/이영숙 지음/424쪽·1만8000원·뿌리와이파리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정창권 지음/260쪽·1만5000원·돌베개
혜원 신윤복이 그린 ‘연소답청’(年少踏靑). 봄을 맞아 조선시대 남녀 청춘들이 푸른 풀을 밟는 답청놀이를 하러 가는 장면을 담았다. 양반이 말에 탄 기생의 시중을 드는 모습이 이채롭다. 뿌리와이파리
‘사랑에 밑줄친 한국사’는 역사 속 사랑이야기에 주목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건 중심인 역사의 행간을 채우는 것은 개인들의 사연이다. 특히 저자는 역사 속 인물들의 로맨스, 스캔들을 소개해 그 시대의 풍경을 보여준다.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율곡 이이(1536∼1584)는 기생을 향한 ‘플라토닉 사랑’을 펼쳤다. 1574년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 이이는 기생 유지에게 흠뻑 빠진다. 이이는 기생의 딸로 태어난 유지에게 측은함을 느끼고 수청을 들게 하는 대신 학문을 전수해준다. 그것도 잠시. 이이가 떠나고, 그들은 9년이 지나 다시 만난다. 여전히 서로가 서로를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이이는 유지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완곡한 거절과 내세의 인연을 약속하는 연서를 남기고 4개월 뒤 세상을 떠난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귀양살이 때 아내에게 반찬 투정을 부리는 편지를 보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제공
이런 사랑 이야기 속에는 ‘주자학의 나라’였던 조선의 가부장적 이념이 녹아있다. 여성은 기생으로서 수청을 들어야 했고, 부인으로서 남편을 뒷바라지해야 했으며, 왕의 소유물인 궁녀는 밀애를 나눴다는 이유로 참형을 면치 못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부인을 잃고 홀로 자식 뒷바라지를 했다. 그는 직접 반찬거리를 만들어서 두 아들에게 보냈고, 편지로 반찬이 맛있는지를 묻는다. 살림과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되던 그 시대 남성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와 외조하는 남자들이라는 당대 남녀 관계의 이모저모는 흥미로운 미시사에 빠져들게 한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