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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가 순진했다’는 생각이 순진하다

입력 | 2021-07-31 10:12:00




2017년 4월 30일 김경수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왼쪽)이 문재인 대선후보 옆에서 유세를 돕고 있다. [뉴스1]


대법원이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의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2심(주심 이동원 대법관)은 7월 21일 댓글 여론 조작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지사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판결에 대해 말이 없다. 김 전 지사가 독자적으로 벌인 일일지라도 유감 표명 정도는 나와야 정상이다.


측근 구속 사과한 盧, 판결에도 침묵한 文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2월 16일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최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이광재 의원 두 사람이 구속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를 하면서, 후보를 하면서 대통령이 되리라는 기대도 높지 않았지만, 정말 대통령이 되면 이런 의혹으로 시달리지 않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철저하게 한다고 노력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국민 여러분에게 부끄러운 모습이 돼 있어 미안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의혹이 드러나면 사과해야 한다는 자각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김 전 지사의 구속 당시에도, 기소 시점에도, 심지어 유죄 확정 뒤에도 묵묵부답이다. 왜 그럴까.

대선 캠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후보 책임이다. 일부 참모가 보고 없이 벌인 일이라도 마찬가지다. 선거가 임박하면, 더욱이 대선 정도의 선거에서 유력 후보라면 수많은 집단이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다. 캠프에서는 이들 모두를 파트너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파트너로 인정하는 순간 논공행상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선별된 파트너에게는 일부나마 금전적 지원을 해주거나 선거 후 각종 공직을 보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드루킹(김동원 씨)과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은 어느 경우에 속했을까. 캠프에서 선별한 파트너였을 개연성이 크다. 김 전 지사가 지속적이고 긴밀하게 드루킹과 소통할 다른 이유가 없다. 파트너가 아니었다면 김 전 지사가 킹크랩(댓글 조작 자동화 프로그램) 시연회에 참석한 이유도 설명되지 않는다. 대선후보 최측근이 파트너 집단의 사무실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과도한 자가발전에 따른 뒷말을 우려해서다. 김 전 지사와 드루킹의 관계는 특수관계, 곧 정치적 운명공동체에 가까웠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김 전 지사는 최후 진술에서 그들이 자신을 이용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 직후 “그동안 두 분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셨다는 이유로 두 분을 지지하는 분들이 수시로 나를 찾아왔고, 나는 성심성의껏 응대했다”며 “그런 내 노력을 김동원은 자신과 조직의 이해관계를 위해 악용하고, 심지어 불법적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했던 것이 드러났다”는 최후 진술문을 공개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의 김 전 지사 비호 논리도 같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7월 21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드루킹이라는 사람의 조직 확대를 위해 활용된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 순진한 김경수가 이용당한 면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는 선거판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대선을 치를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팀 부국장을 맡았다. 2017년 문 대통령이 대선을 치를 때는 선거대책위원회 공보 특별보좌관과 수행팀장을 역임했다. 그가 모사꾼이 득실대는 선거판 생리를 잘 몰라 순진하게 당했다고 보는 것이야말로 ‘순진한’ 발상 아닐까.

남은 과제는 문 대통령이 드루킹의 활동을 인지했는지, 또 관여했는지 가려내는 것이다. 범야권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7월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 여론 조작을 지시하거나 관여했을 거라는 주장은 지극히 상식적”이라며 “현실적으로 일단 허익범 특별검사가 진짜 책임자와 공범을 수사할 수 있도록 특검 활동을 연장, 재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곽 조직 중 드루킹이라는 사람이 있다”

허익범 특별검사가 7월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허 특검은 7월 21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디지털 증거가 핵심인 사건은 증거물의 암호를 풀고 분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장비도 필요하다. 현행법상으로는 검찰이나 경찰로부터 장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데, 기관에 장비를 빌려달라고 요청하면 ‘우리도 쓰고 있다’며 쉽게 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검사 13명을 파견 받을 수 있는데, 법무부와 협조가 쉽지 않았다. 추천한 검사 전원을 파견해줄 수 없다는 답변도 받았다. 수사 개시 전 미리 파견 검사를 받아 기록을 함께 검토하고 토론해야 하는데, 수사 개시 당일 파견 검사를 보내주기도 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계가 뚜렷한 특검이었다.

허 특검은 문 대통령 관련 부분에 대해 “‘외곽 조직 중 드루킹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김 전 지사가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 진술, 드루킹의 대외 선거 조직인 ‘경인선’(경제도 사람이 먼저다)과 관련해 김정숙 여사가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경인선도 가야지, 경인선에 가자’고 말하는 영상이 다였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가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드루킹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 것은 드루킹의 측근 양모 씨, 필명 솔본아르타의 진술을 말한다. “김 전 지사가 문 후보에게 경공모 관련 내용을 보고했고, 자신이 보호해주겠다고 말한 사실이 있느냐”는 특검의 질문에 “네”라고 답한 뒤 김 전 지사로부터 직접 들었다면서 “당시 경공모 회원들이 그런 말을 듣고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수사가 이뤄진다면 출발점이 될 진술이다.

국민은 진실을 알고 싶다. 문 대통령 관련 부분도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국가정보원 댓글 공작에 대한 수사와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수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문 대통령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것은 촛불혁명의 명령이기도 하다.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00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