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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평집에 13명 북적북적”… 지역아동센터 불안한 ‘밀집 돌봄’

입력 | 2021-08-02 03:00:00

원주 아동센터 관련 26명 감염에도 방학 때 맡길 곳 없는 아이들 몰려
책상 띄웠지만 간격 30cm도 안돼… 비좁은 방서 몸 맞댄 채 놀이수업
“부모들 다급한 요청 거절 어려워”, ‘인원 절반 수용’ 방역권고 못 지켜
전문가 “밀집도 낮출 대안 찾아야”




“정말 죄송한데… 큰애랑 작은애 딱 2시간만 봐주실 수 있을까요.”

지난달 29일 오후 4시경 서울의 한 지역아동센터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수화기 너머로 10세, 9세, 5세 삼남매를 둔 어머니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지난해부터 일을 쉬며 아이 셋을 돌보는 40대 어머니는 “오늘은 도저히 혼자서 애들 셋을 감당할 수 없다”며 “첫째와 둘째 저녁 식사만이라도 센터에 부탁해도 되겠느냐”고 물어왔다. 1년 반 넘게 육아휴직 중인 이 여성은 홀로 세 아이를 돌보며 한 달에 3, 4차례 지역아동센터에 ‘SOS’를 요청해 왔다.

○ “감염 우려 알지만 오는 아이 어떻게 막나”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어머니의 애원에 A 센터장은 센터에 머무는 아이들 수를 세어봤다. 모두 13명.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시행에 따라 수용 가능 아동의 절반만 받아야 한다는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의 권고안에 따르면 센터에서 돌볼 수 있는 인원은 9명이다. 이미 기준 초과 상태였지만 A 센터장은 삼남매 어머니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A 센터장은 “방역수칙을 지키고 싶어도 어머니들의 난처한 상황을 알기에 거절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지역아동센터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도, 인원 제한 기준을 초과하면서까지 아이를 돌보는 센터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역아동센터가 아니면 비용 부담 없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센터엔 여전히 아이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달 27일 강원 원주시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센터장과 직원, 아동 등 26명이 집단 감염되자 전국의 지역아동센터에선 “터질 게 터졌다”면서도 “오는 아이를 어떻게 막느냐”는 우려가 동시에 나왔다.

방역당국의 인원 제한 권고가 내려지면서 각 센터에선 “아이를 돌볼 양육자가 있다면 가정 돌봄을 권유한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역아동센터에는 주로 한부모, 조손, 맞벌이 가정 자녀 등 가정 내 돌봄이 어려운 아이들이 다니기 때문이다. A 센터장은 “현재 우리 센터를 찾는 아이들 13명 중 5명은 한부모 가정, 8명은 맞벌이 가정”이라고 했다. 서울 지역아동센터를 관리하는 서울시 관계자도 “방학을 맞으면서 인원 제한 권고가 현실적으로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좁은 공간에 밀집… 폭염에 환기도 어려워
본보 취재팀이 지난달 28, 29일 이틀간 서울 지역아동센터 7곳을 살펴본 결과 전부 권고 인원을 초과해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센터 관계자들은 “방학에 폭염까지 겹친 상황에서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들을 집에 방치할 순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센터 내부는 비좁은 공간에 직원들과 아이들이 밀집해 있어 방역에 취약한 상태였다. 폭염으로 에어컨을 상시 가동해야 해 환기를 자주 하기도 어려웠다. 66.29m²(약 20평) 규모의 가정집에 마련된 한 센터에는 29일 오후 3시경 거실과 방 두 곳에 각각 7명과 6명이 나눠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센터장과 직원까지 더하면 15명이 비좁은 방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9시간 넘게 머물렀다.

‘2m 거리 두기’ 등 방역수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책상 사이에 가림막이 설치돼 있긴 하지만 책상 간 거리는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센터 관계자는 “책상 간격을 최대한 띄웠는데도 방이 협소해 거리가 30cm도 안 된다”고 했다.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몸을 맞댄 채 그림을 그렸다. 센터장이 수차례 “조금만 거리를 띄우자”고 안내해도 그때 잠시뿐이었다. 센터 관계자는 “돌아서면 붙고, 또 돌아서면 붙고… 방법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역아동센터가 수용 인원을 줄이면 저소득 맞벌이 가구 아이들은 갈 데가 없다”며 “지자체가 지역 내 여유 시설을 센터 측에 단기간 제공해 밀집도를 낮추는 등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아동센터는 5월 기준 전국에 4300여 곳이 있고, 센터에 다니는 아동은 11만여 명에 이른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